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내 벗이 여행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누가복음 11:5~8)

그렇게 끈덕지게 구해야 했던 이유

오늘 설교는 제가 작년에 삼일기도회에서 한 번 했던 설교입니다. 당시에 설교를 하고 난 후에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설교에요. 조금 더 풀어내고 싶은 것들이 많았는데, 다 이야기하지 못했던 부분이 많았거든요.

물론 오늘 제가 청년플러스에 이 설교를 가져온 이유는 제 아쉬움때문은 아닙니다. 어쩌면 오늘 추수감사절에 우리가 감사해야 하는 것이 어떤 것일까에 대해 고민할 때, 한 번 쯤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좋은 주제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마침 이번 말씀비타민 본문과도 연결이 되었구요. 그래서 오늘 이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보려 합니다.

오늘 설교는 이야기로 되어 있어요. 하나의 스토리로 쭈욱 이어갑니다. 한 번 들어보시고, 이야기 안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그 날도 특별할 것 없는 날이었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였다. 가족들은 별다를 것 없이, 식사시간에 모여, 평범한 저녁식사를 마쳤다. 식사에 나온 음식도 너무 평범했다. 식탁의 분위기도 예전과 같이 무미건조했고, 그나마 아내가 하루 동안 있었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을 빼면, 그냥 그렇게 식사를 마쳤다. 식사를 마치고, 조그만 호롱불을 키고 있던 우리 가족은 너무 늦지 않게 잠잘 준비를 시작했다. 그렇게 큰 집이 아니기에, 온 가족이 누워자려면, 온 방을 정리해야 했다. 그렇지만 그마저도 별 일 없이 진행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평범했다. 투덜대는 아이도 없었고, 귀칞아서 뺀질거리는 아이도 없었다. 다들 원래 그랬다는 듯, 알아서 치우고, 알아서 정리하고, 알아서 이불을 펴고, 알아서 자기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누군가 먼저 이야기한 것 같다. “안녕히 주무세요.” 그리고는 가족들 서로 잘 자라고 이야기를 하고는 불을 끄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날따라 온 가족이 뒤척이는 것도 없이 다들 편안하게 잠이 들었던 듯 싶다.

한밤중이나 되었을까? 아내가 갑자기 나를 흔들어 깨웠다.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희미하게 뜨고 쳐다봤더니, 아내는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절대 바람이 문을 흔드는 소리는 아니었다. 아주 세게는 아니지만,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것만은 분명했다. 이 시간에 누굴까 생각을 하다보니 문득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도둑일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그러면 문을 두드릴 일이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고, 그러고 나니 더 무서워졌다. 도대체 누굴까? 또 무슨 일일까? 무슨 일인데 이 시간에 문을 두드릴까? 왜 이렇게 온 가족을 깨울까? 도대체 저 문 밖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구길래 왜 말도 안하고 저렇게 문만 두드릴까?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확 밀려왔다. 주변을 둘러보니, 언제 깼는지 아이들도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다. 아이들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겠지. 그래서일까? 아이들은 이불 속에서 고개만 내밀고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지금 저 문으로 갈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몸을 일으켜 이불에서 나와 아직도 두드리는 소리가 나는 문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잠도 덜 깬건지, 아니면 두려운 마음에 목소리가 안 나온건지 모르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십니까?” 그러자 문밖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목소리가 들렸다.

“아. 깨어 계셨군요? 저 옆집 사는 사람입니다.”

깨어있기는 무슨… 자기때문에 깬 것을 다 알면서… 그런데 이 시간에 왜? 오만가지 생각이 들지만, 잠시 뒤로 미루고 말을 이어갔다.

“네. 무슨 일로…?”

“아. 혹시 저녁 드시고 떡 남은 것 있으면 좀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아마 오늘 이야기를 영화로 시작한다면, 이렇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이야기의 처음으로 쭈욱 거슬러 올라가지 않을까 싶어요. 왜냐하면, 오늘 이야기의 시작은 본문의 이야기가 일어나기 한참 전에 이미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어떤 마을, 한 집에 찾아온 손님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혼자서 광야길을 급하게 걷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사람은 자기가 가는 곳을 분명하게 아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길을 한 두 번 걸어간 것이 아닌 게 확실합니다. 이건 나중에 이야기를 앞서서 생각해볼 때 더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한밤중에 광야에서 길을 찾아서, 마을까지 왔고, 그 마을에서 자신이 찾는 집이 어디인지 분명하게 알았기 때문입니다. 표지판이 완벽하게 되어있는 것도 아닙니다. GPS가 있어서 핸드폰만 가지면 모든 길을 볼 수 있는 때도 아닙니다. 네비게이션이 있어서 주소만 넣으면 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때도 아닙니다. 번지수던지, 아니면 도로명이던지 주소라도 분명해서 표지판 보고 찾아갈 수 있는 때도 아니었지요. 그냥 개똥이네 옆이 철수네고, 철수네 뒷집이 영이네 였던 때입니다. 누구에게 길이라도 물으면 “저~~기 가면 있어요.”, “쬐~끔만 가면 됩니다.” 하고 이야기 듣는 것이 다였던 시대입니다.

그것 뿐이겠습니까? 지금처럼 길가에 가로등이 많은 때도 아닙니다. 길가마다 외등이 있고, 불빛을 밝히고 있던 때가 아닙니다. 밤이 되면 모든 사람들이 다 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가던 때입니다. 한 두 집 정도 불을 켜고 있어, 그 불이 골목을 비추어주었을런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입니다. 그런 어두컴컴한 길을 정확하게 찾아가려면, 최소한 그 골목길을 훤히 알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많이 봐주어서 마을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마을을 찾아오는 길은 이건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야말로 길이라는 표시조차 없습니다. 내가 걷는 곳이 길이 되는 그런 때입니다. 이른 저녁이라면 마을에 빛이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마저 지나고 나면 불빛을 찾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때입니다. 허허벌판을, 광야지대를 지나야 합니다. 만약에 그 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해가 떨어지기 전에 숙소를 찾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루가 더 늦어지더라도 그편이 더 안전하지요. 그런데 그 길을 걸어올 수 있었다는 것은 그 길을 자주 다녀서, 불빛이 없어도 갈 수 있을만큼 자신감이 있었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단지 이번에는 무엇이 문제였는지 알 수 없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늦었습니다. 매 번 가던 정도로 시간을 계산했습니다. 해 떨어지기 전까지는 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그렇다고 중간에 멈추기도 애매합니다. 결국 어쨌거나 마을까지는 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어두운 길을 급하게 급하게 걸어갑니다.

급하게 길을 걸어가다보니 다리도 좀 땡기는 것 같습니다. 몸도 더 쉽게 지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쉴 시간이 없습니다. 한 걸음이라도 빨리 마을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때 같으면 벌써 물 한 잔 마시고, 먹을 것이라도 구해서 쉬다가 갔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쉬었어도 열 번은 쉬었을 거리입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도착해야 하는 시간이 늦기도 했지만, 그 마을에 도착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정도 도착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을텐데, 지금 내가 도착하지 않아서 걱정하고 있을텐데, 그 사람에게 미안해서라도 쉴 수가 없습니다. 지금처럼 핸드폰이라도 있다면, 그마저도 안되면 길거리에 어디 공중전화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예전에 사용하던 씨티폰같은 거라도 있어서 연락이라도 할 수 있으면 마음이라도 좀 편하겠는데. 내가 직접 그곳에 도착하는 것 외에는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괜히 나 때문에 맘 졸이고 있을 그 사람을 생각하니 발걸음이 더 조급해집니다. 내가 뭘 잘못 생각한걸까요? 내가 어디서부터 시간 계산을 잘못한걸까요? 아침에 토스트 하나 덜 먹었어야 했나 싶은 생각도 들고, 시간 많다고 늦장부렸나 싶습니다. 아까 괜히 경치가 멋지다고 길가에 앉아서 노닥거렸나 싶습니다. 정말 마음은 불편하고, 미안하고, 답답하고,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을 떨쳐버리고 싶어서, 더욱 더 빨리 걸음을 옮깁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해야 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마을에 도착은 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늦었습니다. 늦어도 너무 늦었습니다. 이건 한밤중을 넘어 한밤중에 한밤중입니다. 마을 전체가 너무 조용합니다. 개미새끼 한 마리 지나치는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발걸음 소리라고는 내 소리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개 짖는 소리조차 없습니다. 그런 마을길을 허겁지겁 걸어 목적한 집까지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집이 가까와오니 문득 걱정이 생깁니다. “어떻게 깨우지?” 이 시간에 나와 기다리고 있지는 않겠지요. 아무리 기다렸어도, 이미 잠이 들어도 백 번은 들었을 시간입니다. “어떻게 하나, 어떻게 깨우지?” 답할 수 없는 질문에 마음이 갑갑해집니다. 그러나 그런 걱정 속에서도 걸음은 관성이 붙은 것처럼 빨리 움직였고, 집 앞에 도착했습니다. 문 앞에 섰는데,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문을 어떻게 두드리는지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냥 두드리면 되는데,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고민 고민하다가 결국 문을 두들깁니다.

문 뒤에서 난리가 난 소리가 들립니다. 아, 이런. 아마 집 주인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마도 온종일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문이 열리고 주인이 어서 들어오라고 수고했다고 인사를 건넵니다. 집에 들어오니 주인이 나에게 많이 힘들었냐고 묻습니다. 그러고 보니 몰골이 말이 아닙니다.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걸어서인지, 옷은 다 흐트러졌습니다. 무리해서 걸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신발은 여기저기 많이 헤졌습니다. 거기다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흙먼지를 뒤집어 쓴 모습이, 내가 이렇게 이 집에 들어와 앉아있어도 되나 싶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앉아있는 내게 주인이 저녁은 먹었냐고 묻습니다. “아 먹었습니다. 오는 길에 먹고 들어왔습니다.” 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내 입이 나를 거부합니다.

“아니요. 너무 늦어서 급하게 오느라 점심부터 아무것도 못먹었습니다.”

내 말에 집안은 또 한 번 난리가 납니다. 주인은 내 모습을 보더니 밖에서 물을 떠다가 손발을 씻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제 겉옷을 벗겨 밖으로 가지고 나가 털어서 들어옵니다. 주인의 아내는 옆에서 한참을 뒤적거리고 무엇을 찾는 것이 아무래도 제게 저녁이라도 차려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손발을 씻고, 몸을 조금 추스리고 집안을 둘러보니 아이들과 눈이 마주칩니다. 아이들은 이제서야 잠에서 깨어 눈도 못 뜨고 나를 쳐다봅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집안을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호기심 넘치는 눈망울로 나를 바라봅니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더니, 이내 아이들은 이불을 푹 뒤집어쓰며 숨어 버립니다. 귀엽기도 하고, 이쁘기도 한 아이들입니다. 그런데 그러고 나니 마음이 정말 더 불편합니다. 지금 저 아이들까지 깨워가면서 내가 이러고 있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까지 신세를 져도 되는건가 싶은 생각에 머리도 복잡합니다. 정말 이게 내가 무슨 신세인가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 때 주인이 내 앞에 오더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금방 먹을 것을 가져다 주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더니 밖으로 휙 나가버립니다. 밖에 뭐가 있나, 밖에다가 음식을 보관하나 싶은 마음도 잠시, “어 설마? 먹을 것이 없나? 아닌가? 그런데 지금 왜 나가지? 밖에 나간다고 뭘 구할 수 있는 시간도 아닌데? 그러면 지금 어딜 가는거지?” 괜히 더 마음이 불편합니다. 내가 못할 짓을 한 것 같아 자리가 아주 가시방석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마음은 불편하지만, 결국 그냥 앉아 있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시간이 얼마쯤 지났을까? 주인이 밝은 얼굴로 떡 세 덩이를 가지고 들어옵니다. 그리고는 가져온 떡을 접시에 담아 제 앞에 내놓습니다. 주인의 아내는 음료와 다른 것들을 가져옵니다. 그렇게 방 한켠에 상을 차려주며, 주인은 이것밖에 못 쥐서 미안하다며, 이거라도 편하게 먹으라며 자리를 비켜줍니다. 어디를 가나 했더니 아이들을 재우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이 조금 정리가 되니 주인이 다시 와서 말을 건넵니다. 얼마나 힘들었냐고, 너무 수고했다고, 오느라고 고생했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말을 덧붙입니다. “어. 천천히 먹어. 너무 급하게 먹지 마. 괜히 급하게 먹다가 체하면, 더 고생하니까. 어차피 조금 늦은거, 조금 더 늦어봤자 별 차이 없으니까 그냥 편하게 먹어. 그리고 혹시나 더 먹고 싶으면 이야기 해. 내가 더 가져다 줄께.” 그렇게 편한 듯 애매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마치고, 상을 무릅니다. 주인은 아이들이 누워있는 자리 옆에 제 자리를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방 정리를 마치고, 온 가족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아마 피곤하기는 피곤했나 봅니다. 눈을 떠보니 벌써 해가 뜨고도 꽤 시간이 지난 듯 합니다. 주인 가족은 벌써 다 일어나서 이불까지 정리를 끝냈습니다. 아이들은 벌써 밖에서 한참 뛰어놀고 있고, 하루를 시작하는 분주함이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주섬주섬 일어나서 주인집 식구들과 인사를 건네니 여기가 어제 그렇게 정신없었던 그곳인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주인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집밖으로 나왔습니다. 주인은 이웃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저도 아주 모르는 얼굴들은 아니기에 인사를 건네며 이야기에 끼어들었습니다. 잘 지내시냐고, 별 일은 없으시냐고 안부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러던 그 때, 옆에 있던 사람이 집주인에게 어떻게 그 시간에 와서 문을 두드릴 생각을 했냐고 말을 건넵니다.

“도대체 몇 집이나 두드린거야? 그래서 떡을 구하기는 했어?”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이웃이 대답합니다.

“아 그거. 내가 줬어. 그나마 떡이라도 가지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그것마저 없었으면 어쩔 뻔 했어?”

그러면서 도대체 몇 집이나 돌아다니려고 그런거냐고, 정말 대단한 친구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아. 이런. 그런거였구나. 아. 어제 밤에 나갔다 온 게 이것 때문이었구나. 이웃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얼굴이 다 빨개집니다. 주인은 괜히 내가 미안해할까봐 나를 쳐다보지도 못합니다. 혹시나 내가 미안해할까봐 눈을 피하면서 내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원래 내가 이야기 해야 하는건데, 나 때문에 그런건데, 주인은 벌써 그 이웃에게 미안하다고, 좀 이해해달라고 말을 건넵니다. 원래 이웃이 사는게 그런거 아니냐고, 그래도 그렇게 돕고 사니까 좋은거 아니냐고 넉살 좋게 넘어갑니다.

아… 저 친구가 저런 말 들을 사람이 아닌데. 저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핀잔들을 사람이 아닌데. 저렇게 사람 좋고, 마음 좋고, 바른 사람이 없는데. 괜히 나 때문에 경우없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더 미안합니다. 그 시간에 다른 집에 가서 문을 두드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남한테 폐끼치는 건 죽도록 싫어하는 저 사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안해도 되는 아쉬운 소리를 해가면서 자기도 아니고, 자식도 아니고, 나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했던 거구나 생각을 하니 미안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화도 나구요. 괜히 내가 그렇게 늦게 오는 바람에, 그 한밤중에 나가서 떡을 구한다고 얼마나 돌아다녔을까? 어떻게 사람들을 깨우고, 아쉬운 소리를 했을까? 어제 그 떡이 그런 떡이라고 생각하니 그렇게까지 나를 챙겨준 주인이 너무 고맙고, 고마울수가 없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정말 쉽지 않았을텐데, 그래도 나를 위해서 그 모든 수고와 어려움을, 쑥쓰러움과 난처함을 다 감내해준 주인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이웃들과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주인집 아이들이 아침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주인과 나는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안에 있는 식탁에는 벌써 아침 식사가 차려져 있습니다. 주인과 마주 앉아 식사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식탁 위에 음식을 보니 마음이 뭉클합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식탁인데, 왠지 모르게 더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식탁 위에 올라와 있는 떡 한 덩어리, 물 한 잔이 그냥 있는 것같지 않습니다. 저 떡과 저 물 한 잔을 준비하기 위해서, 그것을 나에게 대접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수고와 노력을 기울였을지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돕니다. 이렇게 그냥 하루밤 왔다가 가는 나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애쓰고 수고한다는 것이 너무 고맙고, 정말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마주보고 앉아 있는 주인에게 고맙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이제 다시 떠날 준비를 합니다. 다음 목적지까지 늦지 않게 가려면 서둘러서 출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제처럼 또 너무 늦게 도착하게 되면, 또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떠나려고 준비하는 나에게 주인은 다가와 이야기를 건넵니다.

“괜찮아. 에이, 아까 사람들이 괜한 말을 해서… 신경쓰지 마. 저 사람들, 저러고 말은 하지만, 다 금방 잊어버릴꺼야. 그리고 어제처럼 언제라도 찾아 와. 어제보다 더 늦어도 괜찮아. 괜히 길에서 노숙하지 말고, 또 엄한 곳 찾아들어갔다가 무슨 일이라도 당하지 말고. 좀 늦어도 되니까 꼭 우리 집에 와서 자라구. 우리집 문은 언제라도 열려 있으니까, 알겠지?”

아, 정말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고맙다는 말로 표현이 될까요? 무엇을, 얼마나 준다고 그 값이 될까요? 주인은 나를 사랑할 뿐이고, 나를 소중하게 생각할 뿐이라는 것을 나 또한 알기 때문입니다. 나를 사랑해서 그 모든 수고를 감내했고, 내가 소중해서 부끄러움도 마다하지 않은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냥 주인의 그 모든 사랑을 감사함으로 받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인 듯 합니다.

그렇게 주인과, 그리고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길을 떠나려고 하니 마음이 참 행복하고, 즐겁습니다. 이런 나를 이렇게까지 생각해주고, 사랑하는 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나그네일 뿐입니다. 가진 것도 없고,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의미없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런 나를 기억하는 이가 있답니다. 얼마나 가슴 든든한지 모르겠습니다. 아까 나를 진심으로 바라봐주던 집주인의 눈길이 생각나서 눈물이 나려 하네요. 언제 찾아와도, 그 어느 때라고 할지라도 나를 기쁨으로 맞아줄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생각만으로도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걸음이 너무 가볍습니다. 이런 걸음이면 오늘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빨리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또 다시 나는 새로운 하루의 걸음을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청년플러스 어려분. 오늘 이 본문에서 성도님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한밤중에 찾아온 친구를 위해 떡을 빌리러 온 동네를 뛰어다녀야 하는 주인입니까? 아니면 밤 늦은 시간 힘들게 찾아온 집의 문을 두드려야 하는 나그네입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잠자다가 문두드리는 소리에 깨어 먹다 남은 떡을 나눠주어야 하는 이웃입니까? 아니면 그 외에 등장하는 또 다른 인물입니까? 그 어떤 인물이든 괜찮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성도님께 말씀하시는 것이 있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 늦은 밤, 이웃집을 돌며 문을 두드려야 했던 주인은 이웃들의 핀잔에 부끄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감사가 있습니다. 먼 곳에서 찾아온 친구를 잘 보살펴 떠나보낼 수 있다는 행복이 있습니다. 가슴 깊은 사랑과 섬김으로 찾아온 친구가 계속해서 그 걸음을 옮길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었다는 보람이 그 마음에 가득합니다. 그렇게 나의 친구를 위해 봉사하고 섬김으로만 채울 수 있는 그 기쁨과 감사가 그 삶에 충만합니다. 그리고 친구를 떠나보내며 한 번 더 생각하게 될 겁니다. 그래, 맞아. 어제 그렇게라도 빵을 가져온 게 잘 한거야. 다음에도 또 이런 일이 일어나면, 그 때는 조금 더 당당하게 문 두드릴꺼야. 그게 내가 할 일인거야.

떡을 나누어 준 이웃은 또 나누어준 대로 마음에 흐뭇함이 있습니다. 물론 어제 저녁에는 당황스러웠고, 기분 나쁘기도 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웃끼리 그러고 사는 거지 싶은 생각이 듭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라도 그 상황에서 그렇게 했겠다 싶은 생각이 드니까요. 그렇게라도 할 수 있는 이웃이 있다는 게 좋은 거고, 그래도 나를 찾아 내 대문을 두들겨 주었다는 게, 그래도 내가 인생 잘못 산 것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흐뭇합니다. 그러면서 한 번 더 다짐하게 되는 거죠. 그래. 나중에라도 혹시나 또 이런 일이 있을 때, 정말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 그런 마음 넉넉하고, 편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고 말이죠.

그리고 한밤중에 찾아온 나그네는 그 모든 사랑과 섬김, 그 신뢰 안에서 힘내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마 가장 감사를 표현해야 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그들 모두가 자신을 위해 그렇게 희생하고, 섬겨준 것이 얼마나 고마울까요? 내가 뭐라고,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다들 잠을 설쳐가면서 이렇게 나를 대접해주었을까요? 어쩌면 그냥 하룻밤 왔다 가는 사람인데, 그냥 대충 대충 넘겨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할텐데. 그 때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고,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더 행복하고, 좋은 기분으로 풍요로워지지 않았을까요? 그래도 나를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오늘 하루 그의 발걸음은 충분히 힘있고, 가벼울테니까요.

그렇게 그들 모두의 간청함, 애절함, 간절함은 서로를 더욱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합니다. 서로를 향한 섬김과 봉사가 모두를 더 깊은 기쁨과 감사로, 행복과 만족으로 인도한 게 아닐까요?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요한복음 13: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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