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에 대해서

누가는 누구인가?

* 수리아 안디옥 출신, 헬라인

* 아마도 미혼

* 의사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골로새서 4:14)

* 복음서 기록자 중에 유일한 이교도 출신의 개종자

*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술자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사도행전 1:1~2)

* 사도 바울과 함께 선교여행을 함께했을 것으로 추정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빌레몬서 1:24)

* 사도 바울과 마지막까지 함께했을 것으로 추정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디모데후서 4:11)

누가는 왜 복음서를 썼는가?

누가복음 이전의 상황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누가복음 1:1~3)

* 누가복음 이전에도 수많은 복음서가 기록되어 있었다.

* 누가는 이전에 기록된 저작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복음서를 작성했다. 그러므로 그의 저작은 3차 저작이 된다.

* 예수님의 실제 경험자의 고백 (1차) >> 경험자의 기록물 및 복음서 (2차) >> 편집자의 정리된 글 (3차)

누가는 이전에 나온 복음서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는가?

* 누가가 자신의 복음서를 기록해야 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 첫 번째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어울리는 복음서의 작성이다. 그는 복음서를 작성한 유일한 이방인이다. 사도행전에서도 드러나듯이 그는 유대인 중심의 공동체에서 생활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이방인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던 인물이다. 그에게 있어 유대인 중심의 복음서는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이방인의 관점에서 살핀 복음서가 필요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누가복음 19:38)

* 누가는 “호산나”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다가오매 (누가복음 22:1)

* 누가는 유월절과 무교절의 구분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 두 번째는 이것이 교회 공동체를 향한 글이 아니라 개인을 위한 글이라는 추측이다. 그는 “데오빌로” 각하에게 글을 보낸다. 개인적인 서신서의 행태를 갖고 있다. 즉, “한 대상에게 복음을 설명하기 위한 글은 아니었는가”하는 추측을 낳게 한다. 그러므로 이전에 복음서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대상으로 삼고 있는 그 인물에게 최적화된 방법으로 복음을 설명하고자 했던 것은 아닌지 추측할 수 있다.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누가복음 1:3)

데오빌로 각하는 누구인가?

* 데오빌로 각하가 누구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누가복음 1:3~4)

* 그가 실존 인물인지도 알 수 없다. 각하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그가 사회적, 정치적으로 신분이 높았을 것은 추측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는 유대인이기보다는 이방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누가는 의도적으로 유대적 색채를 배제하고, 최대한 일반적인 표현으로 복음서를 작성했다고 볼 수 있다.

* “데오빌로”라는 이름이 교회 공동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Deos + Phileo는 주님을 사랑하는 자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하는 이들은 당시 교회가 핍박당하는 상황에서 직접적인 복음 전파가 어려웠기 때문에 데오빌로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복음을 전달하고자 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 다만 이 경우, 앞서 살펴본 누가복음의 특징은 그가 속한 공동체가 유대인 중심이라기 보다는 이방인 중심이었을 것을 추측하게 한다.

* 두 번째 해석이 힘을 얻는 이유는 사도행전때문이다. 누가는 사도행전을 시작하며, 자신이 이전에 글을 적어 보냈던 것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이어진 사도행전의 내용은 처음 복음을 듣는 자를 위한 내용이 아니다. 이것은 교회공동체를 향한 글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데오빌로는 단지 한 개인이라기보다는 한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사도행전 1:1~2)

다양한 의문점

* 사도 바울과의 동행 중에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했다는 것은 사도 바울이 이에 대해 동의하고 공저했다는 의미로 이해해도 되는가? 그렇다면 사도 바울의 생각이 누가복음에 동일하게 적용되었다고 볼 수 있는가?

* 이 경우, 누가가 설명하는 복음과 그 신학은 바울의 신학과 차이나는 부분도 있다. 누가는 사도 바울과 신학적 관점이 달랐던 것일까? 그가 사도 바울과 함께 움직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던 것인가?

* 이 경우 누가복음이 정경으로 선택되는데 있어서 누가의 이방인이라는 신분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인가? 그가 가지지 못한 유대인적 관점과 실천, 문화와 삶의 정황은 무시되어도 되는 것이었는가?

누가복음이 갖는 특징은?

누가복음은 약자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 그가 이방인 중심의 공동체에 있어서인지는 모르나, 그는 이방인, 약자, 소외된 자, 약한 자에 대한 관심이 많다.

누가복음은 성령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 누가는 다른 복음서에 비해 성령에 대한 언급이 많다. 그는 복음의 시작부터 성령의 개입이 시작되었다고 기록한다.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누가복음 1:41)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하여 이르되 (누가복음 1:6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누가복음 2:27)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누가복음 3:2)

* 누가복음이 보여주는 성령에 대한 관심은 사도행전과 연결하여 생각할 수 있다. 마가의 다락방 사건을 체험했고, 초대교회의 사건을 경험했고, 사도 바울과 함께 복음의 확장을 확인한 누가에게 있어서 성령님의 강조는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누가복음은 임박한 환난보다는 제자도에 관심을 갖는다.

* 많은 학자들은 누가복음이 기록된 때는 이미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누가복음이 보여주는 예루살렘 멸망의 모습이 너무 구체적이고, 명시적이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이미 이 상황을 경험한 누가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기록한 것으로 이해한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9:43~44)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누가복음 21:20~21)

* 그렇기에 누가에게 있어서 ::임박한 종말, 혹은 유대인이 가지고 있던 하나님 나라의 도래::라는 주제에서는 조금 거리를 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 누가는 그보다 현실의 삶에 집중하며, 실천하는 제자도에 대한 부분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것은 그의 구조적인 부분에서도 드러나는데, 실제로 예루살렘으로의 여행에 대부분의 내용은 제자도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누가복음의 구조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 (1:1~2:52)

* 세례요한의 탄생, 예수의 탄생, 사가랴와 안나의 찬양

* 성전의 문답 (누가복음 2:41~51)

사역을 위한 준비 (3:1~4:13)

* 세례요한의 소개, 예수님의 세례 (누가복음 3:1~22)

* 예수님의 족보 (누가복음 3:23~38)

* 예수님의 시험 (누가복음 4:1~13)

갈릴리 사역 (4:14~9:50)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누가복음 4:14)

예루살렘으로의 여행 (9:51~19:28)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누가복음 9:5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누가복음 19:1)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누가복음 19:11) : 므나비유

예루살렘 사역 (19:29~24:53)

감람원이라 불리는 산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누가복음 19:29) : 나귀 새끼

특징

* 공관복음서와 동일한 구조

* 예루살렘으로의 여행이 길다.

* 동일 구조를 갖고 있으나, 초점은 다르다.

누가복음의 특징에서 바라본 누가복음 1,2장

사가랴, 엘리사벳, 마리아

* 이야기의 주인공 : 나이 많은 여인

* 하나님의 말씀이 여자에게 임함 : 마태복음은 아버지 요셉에게 임함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누가복음 1:26~28)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누가복음 1:41)

마리아의 찬가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누가복음 1:46~55)

* 누가복음이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노래

예수님을 맞이한 사람

목자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누가복음 2:8)

시므온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누가복음 2:25~26)

안나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누가복음 2:36~37)

적용

* 예수님의 복음이 가지고 있는 관심, 복음이 바라보는 관점 : 여기에 누가 공동체와 이후 교회가 동의했다. 그래서 수많은 복음서 중에 누가복음을 선택했다.

* 복음의 일차적 관심이 헐벗고, 굶주리고, 고통받고, 억압받는 이들이다. 이것이 개념적이고, 이성적인, 사변적인 것이 아니라 진정 이 시대에도 동일하게 현실적, 실제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가? 지금 예수님이 오셨을 때, 그런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실 거라고 믿는가?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먼저 나타나실 것을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가?

* 그게 아니라고 하면, 지금 나는 무슨 복음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Share your though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