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네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그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 가고 재판장이 너를 옥졸에게 넘겨 주어 옥졸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네게 이르노니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2:57~59)

세상 사는 게 힘듭니다

1.

이번 학기 성경공부하면서도 느끼는 거지만, 이게 참 어려워요. 성경을 알아간다는 게 쉽지가 않죠? 혼자 성경을 읽고, 그걸 이해한다는 게 참 어렵습니다. 어려운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이게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겠고, 뭘 말하는지도 잘 모르겠구요. 문장도 어렵고, 복잡하고, 그래서 읽기만 하면 잠이 와요. 이상하게 성경만 읽으면 수면제가 필요없어요. 그쵸?

오죽하면 목사님들이 아무리 짧아도 3~4년동안 공부를 하겠어요? 그것만으로 부족해서 또 공부하고, 또 공부하잖아요? 그렇게 다 하고나서도 이상한 이야기하는 목사님들은 또 얼마나 많아요? 그렇게 오랫동안 공부하고, 공부했는데, 저분은 지금 무슨 이야기하시는건가 싶은 생각이 드는 목사님들이 또 있죠. 이런 목사님들 보면, 솔직히 이런 이야기 한 번 해 드리고 싶어요. 사도행전 26장 24절이에요.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사도행전 26:24)

아무튼, 그렇게 어려운 성경이다 보니, 사실 성경은 읽지만, 그렇게 크게 기대하지 않고 읽는 경우가 생겨요. 그냥 우선 하는 거죠. 안하면 안 되니까 해치워버리는 것처럼 읽을 때가 생겨요. 그쵸? 무슨 말인지도 몰라요, 그렇다고 깊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요. 어차피 모르겠거든요. 그런데 안 읽기에는 뭔가 또 좀 껄쩍지근 해요. 그래서 우선 읽어요. 읽기만 해요. 무슨 숙제 같아요.

2.

그러고 보니까 또 제 아이들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네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 아내도 일을 합니다. 직장에 나가요. 그러다 보니까 제 장모님이 아이들을 봐주십니다. 그래서 제가 권사님들이 이해가 가요. 제 생활하고 너무 똑같거든요. 제 가정 모습이나, 권사님 집사님들 사시는 모습이나 별 다를 게 없어요. 그래서 너무 이해가 되요. 암튼, 그런데 말이죠. 장모님이 아이들 생활을 어느 정도 챙겨주기는 하시지만, 이게 세밀한 데까지 다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으시잖아요? 그렇다고 맨날 장모님이 아이들에게 잔소리하게 만들 수도 없구요.

그 중에 가장 걱정이 독서에요. 책을 좀 읽게 해야겠는데, 저나 아내가 지키고 앉아서 독서를 시킬 수가 없더라구요. 이게 좀 붙어 앉아서, 내용도 확인하고, 문맥도 파악하고, 그러면서 대화도 하면서 책을 읽어야 하는데, 물리적인 시간이 안 되는 거에요. 그렇다고 그냥 맡겨두고, 읽으라고만 하는 것도 아닌 것 같더라구요. 다 읽었다고 하는데, 확인할 방법도 없고, 그렇다고 대충 읽고 넘어가는 걸 봐주는 것도 아닌 것 같구요. 매 번 독후감 쓰게 하는 것도 어렵더라구요.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아이들에게 안 읽고 거짓말하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구요.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녹음입니다. 요즘 아이들 핸드폰 하나씩은 다 있잖아요? 그러니까 핸드폰 녹음기로 책을 녹음을 시켰어요. 매일 하루에 성경 두 장을 읽어서 녹음하는 거죠. 그리고 읽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책도 녹음을 시키는 거에요. 하루에 한 20~30분 분량을 주는 거에요. 그러면 어쨌거나 이걸 녹음해야 하니까 소리내서 읽어야 하거든요. 그냥 대충 눈으로 읽고 넘어가는 게 안 되는 거죠. 거기다가 제가 매일 확인할 필요도 없는 거에요. 녹음한 시간이 남잖아요? 그리고 녹음한 파일이 남거든요. 그러니까 가끔 한 번 씩 핸드폰만 열어보면 되는 거에요. 그려면 그 때까지 녹음한 게 쭈욱 뜨니까 뭐 말할 게 없더라구요.

그런데 이렇게 하니까요, 아이들 말이 빨라져요. 저보다 더 빨라요. 아주 랩을 해요. 빨리 녹음해야 빨리 놀거든요. 빨리 해치워야 하는 거에요. 그러게요. 아이들이 제가 의도한 대로 움직이지는 않더라구요. 아무튼 그래도 아직 녹음은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나름 자기 목소리로 성경책 하나가 생기는 거에 무척 만족해하긴 하더라구요.

아무튼 말이에요. 우리가 성경을 이렇게 읽어요. 다다다다다다… 그리고 끝내요. 그렇게라도 읽는게 낫죠. 그건 맞아요. 그런데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라고 이야기하게 되죠.

3.

그런데 말이에요. 이게 정말 성경을 몰라서 그런 걸까요?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솔직히 그것보다 다른 이유가 더 큰 것 같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무슨 말이냐 하면요, 이것까지 머리 아프게 고민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거에요. 조금 더 풀어서 말하면 이런 게 아닐까 싶어요.

“하나님. 생각보다 세상 사는게 쉽지 않습니다. 얼마나 할 일이 많고, 얼마나 바쁜데요. 안그래도 피곤하고, 지쳤는데, 그냥 대충 넘어가면 안 될까요? 안그래도 머리 복잡한데, 성경까지 신경쓰느라고 더 지치게 하지는 않아주시면 안 될까요? 그냥 알아서 할테니까, 자꾸 더 복잡한 이야기 안하고 우선 넘어가면 안 될까요?”

성경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이 참 많더라구요. 다 떠먹여 줘야 하는 성도들이 많아요. 고민할 생각이 없어요. 성경을 끌어안고 씨름할 생각이 없고, 그럴 열정이 없어요. 그럴 마음이 없어요. 그냥 그건 목사님이 알아서 씨름해주시고, 저는 그냥 결론만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뭐 이런 거랄까요? 그것까지 부여잡고 실랑이를 하고, 몸부림을 쳐서 뭔가 또 찾아내야 한다고 하니, 이건 너무 피곤하고 지치는 거죠. 그냥 신앙생활이라도 좀 편하게, 쉽게 하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그것도 이해는 갑니다. 그러게요. 요즘 사는 게 얼마나 피곤해요? 세상 사는 게 좀 어려운가요? 안그래도 어려운데 코로나가 아주 기름을 부었죠. 더 긴장하게 되고, 혹시나 짤릴까봐 더 걱정도 되구요. 들어오던 돈도 안 들어오고, 자금도 회전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계속 멈춰 서 있구요. 그나마 돈이라도 도는 곳은 좀 낫죠. 아예 모든 것이 멈춰서서 폐업조차 못하는 사람들도 넘쳐나잖아요? 그런데 지금 성경가지고 씨름하고, 신앙가지고 토론을 하고, 고민을 하는 게 너무 사치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4.

그 말도 맞아요. 그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말이에요. 이런 생각에 충분히 동감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동의할 수 없는 이유가 있어요. 그 중에 하나는 그럼 그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게 뭐냐는 거에요? 신앙이에요, 아니면 생존이에요? 믿음이에요, 아니면 생활이에요? 조금 더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돈 버는 거에요, 아니면 하나님따라 살아가는 거에요? 먹고 사는 문제때문에 하나님을 고민할 수 없다고 하면, 그 무게중심은 어디에 가 있는 거에요? 돈 벌어서 생존하는 거를 고민해야 해서,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이야기한다면, 그 사람에게 있어서 신앙은 어떤 의미인 거에요? 그렇게 생활에 밀리고, 생존에 치이고, 그래서 저기 가장 끝에 가 있는 신앙을 향해서 내가 아무리 가치있게 생각하고,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한들, 이미 내 행동이 내 마음을 보여주고 있는 건 아니냐는 겁니다.

너희는 식사 때 식탁에 무엇이 오르고 옷장에 있는 옷들이 유행에 맞는지 따위로 안달하며 설치지 마라. 너희 내면의 삶은 뱃속에 넣는 음식이 전부가 아니며, 너희의 겉모습도 몸이 걸치는 옷이 전부가 아니다. 까마귀를 보아라 얽매일 것이 없이 자유롭고, 업무에 속박되지 않으며, 하나님이 돌보시니 염려가 없다. 들판에 나가 들꽃을 보아라. 아무도 보아 주지 않는 들꽃에도 그토록 정성을 들이시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너희를 돌보시고 자랑스러워하시며, 너희를 위해 최선을 다하시지 않겠느냐? 나는 지금 너희로 여유를 갖게 하려는 것이며, 손에 넣는 데 온통 정신을 빼앗기지 않게 해서, 베푸시는 하나님께 반응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뭔가 놓칠까 봐 걱정하지 마라. 너희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다.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그 나라를 주시기 원하신다. (누가복음 12:25~32)

5.

그리고 또 한 가지 오늘 성경이 이야기해요. 하나님이 이렇게 이야기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얼마나 신경 써서 너한테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아? 내가 얼마나 신경써서 성경을 기록했는지 알아?” 이렇게 말이죠. 무슨 말이냐 하면요. 성경은 그렇게 어려운 책이 아니라는 겁니다. 아까는 그렇게 어렵다고 한참 말을 해놓고 이제와서 무슨 이야기냐고 묻고 싶으시죠? 그런데 말이에요. 제가 절대 거짓말하거나 속이는 게 아닙니다. 성경이 이야기하려는 기본적인 생각은 절대 어려운 게 아니라구요. 예전 국어시간으로 이야기하자면, 중심주제를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아요. 그런데 주변에 붙어있는 게 많아서 어려운거죠. 괜히 쓰인 단어가 어렵고, 역시적인 거,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게 햇갈리게 만드니까 그런거지, 중심생각, 주제를 잡는 건 어렵지 않다구요.

오늘 말씀도 그렇다구요. 누가복음 12장을 쭈욱 읽고 나서 정말 성경이 뭘 원하는건지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신경을 안 써서 읽어서 그런 거에요. 그만큼 쉽게 풀어서 설명하신다구요. 오죽하면, 오늘 말씀을 메세지 성경은 이렇게 해석합니다.

너희가 반드시 천재가 되어야만 이런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사리분별만 제대로 하도 된다. (누가복음 12:57)

이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이 이것이에요.

구름이 서쪽에서 오는 것을 보면 너희는 큰 비가 오겠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다. 또 바람이 남쪽에서 불면 오늘은 덮겠다고 하는데 그 말도 맞다. 사기꾼들아! 너희가 날씨의 변화는 읽을 줄 알면서, 지금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계졀의 변화는 왜 읽을 줄 모르느냐 (누가복음 12:54~56)

6.

그러니까 성경을 읽고 뭘 모르겠다고 하는 건 사실은 정말 몰라서가 아니라는 거에요. 그만큼 관심을 갖고 신경써서 읽지 않는다는 이야기라구요. 생각해보세요. 맨 처음 성경을 읽었던 사람, 그 사람은 우리처럼 책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 때는 책도 귀했어요. 그러면 어떻게 성경을 읽었을까요? 읽는 게 아니에요. 들었죠. 한 사람이 두루마리를 가지고 나가서 큰 소리로 읽었어요. 그러면 그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들은 거에요. 그렇게 성경을 읽고 묵상했어요. 지금처럼 책을 들고 공부하고, 외우고, 그런 게 아니라구요. 그런데 말이에요, 그렇게 들어서 알 정도의 이야기였다구요.

그리고 맨 처음 예수님을 믿고 따른 사람들이 학식이 높고, 똑똑하고, 당대에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많이 따라다녔죠? 그렇짆아요? 학벌도 좋고, 빠릿빠릿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많이 따랐잖아요? 정말이에요? 아니에요. 누가복음 처음 시작하면서도 말씀드렸잖아요? 누가복음의 관심은 없는 사람, 소외된 사람, 낙심한 사람, 경쟁에 밀린 사람, 낙오자, 패배자, 그래서 세상에 중심에 절대 끼어들지 못한 사람들이 대상이었다구요. 그런 사람들에게 심오한 이야기하면 뭐 해요? 그런 사람들을 무시해서가 아니에요. 그것도 바탕이 있어야 쫓아가죠. 정말 그럴 수 없는 사람들에게 철학을 이야기하고, 사상을 이야기하는 게 나쁜 사람이라구요.

예수님은 그런 분 아니에요. 그렇게 설명하실만큼 상대방에 대해 관심없는 분이 아니라구요. 그들이 이해할 수 있게 전달하셨어요. 그들도 다 알아들을 수 있게 이야기하셨다구요. 그래서 비유로 말씀하신 거잖아요. 그래서 뭐라고 이야기하세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관심이라구요. 기본적인 관심이요. 정말 들을 생각이 있냐구요? 듣고 싶으냐구요?

7.

결국 이것은 예수님에 대한, 그리고 하나님의 계절에 대한 관심입니다. 기본적인 관심이에요. 그런 것이 변화되고, 진행되고 있는 것을 알아채는 관심입니다. 아무리 눈앞에 보여줘도 관심이 없으면 모릅니다. 아무리 눈앞에 분명히 드러나도 내 관심사가 아니면 절대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게 사람이에요.

생각해보면 정말 그래요. 내 주변에 얼마나 힘든 사람이 많은지 관심갖지 않으면 절대 모릅니다. 내 주변에 내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관심없으면 절대 몰라요. 나와 함께 10년, 20년 구역모임을 하지만, 정말 그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관심없으면 절대 알 수 없습니다. 아무리 평생을 함께 살아도, 관심이 없으면 아내 머리모양 바뀐 것은 절대 안 보여요. 내가 핸드백 바꾸고 들고 다녀도, 남편은 절대 몰라요. 그뿐인 줄 아세요? 남편이 핸드폰 바꾸고, 카메라 바꾼 것은 절대 눈에 안 보여요. 관심사가 아니거든요.

정말 몰라서 모르는 게 아니라는 거에요. 정말 어렵고 힘들어서 모르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알 수 있어요. 뭘 해야 하는지 알아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다 알아요. 문제는 그렇게 행동해야겠다는 마음이 없어요. 그렇게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어요. 그게 귀찮아요. 꼭 그렇게 해야 해? 꼭 그렇게만 해야 해? 그냥 귀찮고 불편한데, 하던 대로 하면 안 될까? 뭐 꼭 그렇게 유난떨어야 해는거야? 그냥 대충 하고 넘어가면 안 되는거야? 솔직히 나에게서 먼저 나오는 말이 이런 말들 아닌가요?

사람이 기본적으로 지키고 살아야 하는 것은 많지 않아요. 아니 많지 않은 것은 아니죠. 그렇게 표현하는 것보다는 다 안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네요. 오죽하면 예전에 책 제목에 이런 게 있었잖아요?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유치원에서 배웠어요. 무슨 말이에요? 벌써 다 안다구요. 모르는 게 아니라구요. 그렇게 살 생각이 없는 거라구요.

8.

예수님이 이야기하세요.

“자, 생각해봐라. 너가 잘못을 저질렀어. 그래서 어떤 사람이 피해를 입은 거야. 잘 피해다녔는데, 어쩌다가 그 사람한테 잡혔어. 그래서 지금 너가 그 사람에게 끌려가는 중이야. 큰일 났지? 당연히 큰일 났잖아? 이대로 저 사람한테 끌려서 법정까지 가면 넌 이제 끝인거야. 돈을 갚아주는 것도 갚아주는 거지만, 벌금도 엄청나고, 까딱하면 감옥에도 꽤 오래 들어가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구. 자, 그러면 너는 어떻게 하겠니? 어떻게든 그 사람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하지 않을까? 어떻게든 그 사람을 잘 설득해서, 정 안되면 너가 가진 것 중에 얼마라도 그 사람에게 주고, 지금의 상황은 해결하려 하지 않을까? 그냥 그렇게 끌려서 법정까지 갈꺼야?

자, 여기서 지금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깊이 숙고하고, 논리적으로 따지고, 경우를 따지고, 법률 공부해서, 그렇게 움직일꺼야? 이 상황이 지금 그렇게 해야 답이 나오는 상황이야? 아니라구. 우선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 알아. 내가 지금 너에게 이야기하는 건 이런 정도의 결단인거야. 이런 정도의 상황파악이라구. 이것도 모르겠다고, 이것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지금 나에게 묻는 거야?”

내가 정말 오늘을 말씀따라 생활하기 싫은거에요, 아니면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거에요? 예수님이 뭘 원하는지 몰라서 못 하는 거에요, 아니면 하고 싶지 않은 거에요? 진짜 가야 할 길을 모르는 건가요, 아니면 그 길이 그리 좋아보이지 않는 건가요? 예수님이 지금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몰라서 이런 질문을 던지는 건가요, 아니면 내가 알아서 실천하기를 원하셔서 하시는 말씀인 거에요? 뭘 자꾸 얼마나 피하시려구요? 얼마나 더 뺀질거리시려구요? 그래서 도대체 내가 원하는 게 뭐고, 얻고 싶은 게 뭐냐구요?

우리의 이런 모습을 바로 앞 말씀에서 이렇게 이야기하셨어요. 21절이에요.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누가복음 12:21)

이걸 메세지성경은 이렇게 번역했더라구요.

너희의 창고를 하나님이 아니라 너희의 자아로 채우면 바로 이렇게 된다 (누가복음 12:21, 메세지)

참 흥미로운 표현이에요. 내 안을 하나님으로 채우는 게 아니라 내 자아로 채운다. 내 자아의 관심, 내 자아의 생각, 내 자아의 욕망, 욕구, 이런 것들이 나를 움직이고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자꾸 하나님이 하라는 것은 눈에 안 들어오고, 다른 것만 하고 싶어지는 게 아니냐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다는 거에요.

9.

결국 돌고 돌아서 결론은 하나네요. 그러게요. 성경이 다른 게 없어요. 맨날 조금 색다르고, 신기한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결론을 보면 맨날 뻔해요. 그래서 제가 이야기해드렸잖아요. 기승전말씀, 기승전하나님, 그런 거라구요. 그게 아니면, 그게 더 문제인거라구요. 그만큼 쉽다구요. 어렵지 않다구요. 모르는 게 아니라구요. 이제는 그만 인정 하자구요. 따지지 말고, 아는 것부터 하자구요.

이제 오늘로 이번 학기 성경공부가 마무리됩니다. 한 학기 수고하셨습니다. 매일 성경읽고, 묵상하시느라 수고하셨구요, 매 주 화요일마다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공부하시느라 수고하셨구요. 정말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한 분 한 분 붙잡고, 고생하셨다고 말씀드리고 싶구요, 박수 쳐 드리고 싶어요. 이렇게 마지막까지 함께하지 못한 게 그래서 더 아쉽고 안타깝네요. 아무튼 정말 멋지다고 꼭 박수 쳐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그래서 꼭 부탁드리고 싶어요. 그래도 이렇게 어렵게 습관들인 거 잊어버리지 말자구요. 그래도 매일 아침 성경책 펴던 이 습관 여기서 끝내지 말자구요. 해야 하는 거잖아요? 원래 했어야 하는 거잖아요? 몰라서 안한 것 아니잖아요? 그러면 이번 기회에 마지못해 끌려가는 모습이라고 해도, 이제는 계속 하자구요. 그냥 모르고 쓱 넘어가주자구요. 하나님이 뭘 좋아하실지 너무 잘 알잖아요?

그렇게 우리의 모든 삶의 자리를 예배의 자리로 바꾸고, 축복의 자리로 바꾸고, 은혜의 자리로 바꾸어가는 우리 17지구 모든 집사님, 권사님이 다 되시기를 바라고, 그렇게 주님의 은혜와 축복을 항상 삶에 충만하게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삶과 가정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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