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목회 변화와 창의적 대안 | 강의 3

포스트 코로나 지구 생태환경 변화 | 김정형 (장로회신학대학교)

 

우리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 김정형 교수님,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가르치고 계시고요, 제목은 포스트 코로나 지구 생태환경 변화입니다. 김정형 교수님을 우리 네트워크이지만 박수로 환영하겠습니다. 예 부탁드립니다.

Lecture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이번 온라인 심포지엄에서 방금 말씀하신 포스트 코로나 지구 생태환경 변화를 주제로 발제를 맡은 장로회신학대학교 김정형입니다. 지금 포스트 코로나 얘기를 하는데, 저는 기후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생태와 기후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요, 제가 창조론에 관심이 많고, 오늘날 창조신앙이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가 직면한 창조신앙의 도전은 과거 어떤 우주와 생명의 과거 역사에서부터 오는 게 아니라 이제 우리 미래에서 온다는 그런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 직면하게 될 미래의 도전, 특히 기후위기를 중심으로 한 이 도전 앞에서 우리 한국 교회가 어떻게 창조신앙을 지켜낼 것인가,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부분에서 이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내다보면서 이 문제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서 우리가 기후위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다시 깨닫는 계기도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어떤 실낱같은 희망을 보기도 했기 때문에, 그 두 가지 측면을 함께 이야기해 드리면서 여러분과 함께 잠시 이야기를 나누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 현실과 전망에 대해서 과학자들 얘기하는 것을 잠깐 먼저 언급하고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은데요. 지구온난화에 대해서는 여러분들도 많이 말씀을 들었겠지만, 지구 전체 연평균 기온이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 지구 온난화 현상과 관련해서 과거에는 기후변화라는 다소 중립적인 표현을 썼는데, 요즘에는 산불도 있고, 호우도 있고, 일부 지역에서는 기근도 있고, 해수면 상승으로 연안 지역의 침수되기도 하고, 그리고 다양한 생물 종들이 멸종하는, 그런 상황들을 보면서, 이 위기의 심각성을 강조하고자 기후변화라는 표현 대신에 기후위기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위기를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인 개념 중에 하나는 지구 연평균 기온이고, 또 하나는 전지구상에 있는, 대기 중 대표적인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의 농도의 관한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 그만큼 온실효과가 심해지고, 지구 연평균 기온이 상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개념, 변수의 이 변화가 지난 수십 년간, 수십만 년간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전 지구 상에 있는 수많은 과학자들이 협력해서, 집단지성을 발휘해서, 오랫동안 함께 연구를 했고, 최근에 10여 년 전부터 합의된 결론이 있습니다. 대략 이렇습니다.

인간 활동으로 인해서 산업화, 1750년 전후 산업화가 시작되기 이전과 비교했을 때, 지금 지구 전체 온도가 1.0도 정도 상승했다. 그리고 지금 같은 속도로 지금 지구온난화가 계속된다면 10년 내, 아니면 늦어도 30년 내에 1.5도에서 2.0도까지 정도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이 원인 중에 하나를 이산화탄소 농도를 이야기하는데, 대기 중에 탄소 농도가 산업화 이전에 280ppm이었다가 지금은 400ppm으로 43% 정도 증가했는데, 지난 80년간 200ppm에서 300ppm 왔다 갔다 하던 농도가 갑작스럽게 증가한 건 아주 이례적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여기서 강조하는 것 중에 하나가 지금의 온난화 현상의 원인에 산업화, 인간의 산업 활동이 있다는 거죠. 인간이 이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제 간단하게 지금 말씀을 드렸는데, 지금 기후위기와 관련해서 제가 강조하고 싶은 건 이겁니다. 기후변화, 기후위기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이 인간 활동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분명하게 인식하면 반대로 해결책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활동을 바꾸게 되면, 인간이 활동을 재구조화한다면, 기후변화로 촉발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뜻도 됩니다.

그래서 이제 학자들 중에서는 인류세(Anthropocene)라는 단어를 쓰기도 하거든요. 인류가 지질학적인 연대 안에서 인류가 지구 환경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게 커진 이 시대를 이제 인류세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요. 어떤 사람은 2000년부터 라고 이야기하고 어떤 사람들은 산업화 시대부터라고 이야기하는데, 시작 시점은 논란이 있지만, 공감대는 지금 지구 상에 과학기술 시대에 인류가 가지는 영향력이 엄청나게 커졌다는 거죠. 지구 상에 존재했던 그 어떤 피조물도 어떤 생물도 이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기후위기와 관련해서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은 신학적인 의도도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한국 교회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엄청나게 강조해요. 그러다 보니까 모든 게 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예를 들면 기후변화와 기후위기도 하나님의 심판, 아니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그리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이런 부분에서 이제 인간의 책임을 외면하거나, 부정하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방관, 방기 하는 그런 경향이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의 주권, 능력, 은혜를 강조하는 것과 더불어 인간의 자유와 책임을 강조하는 게 우리 한국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런 신학적인 전제가 마련이 돼야지 포스트 코로나 시대, 지구 생태환경변화에서 교회가 선교적 사명을 적절하게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지구촌 모델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지금 기후위기에 대해서 그 당사자 책임 당사자가 당사자가 인간이라는 사실, 그리고 인간이 지금의 생활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때에야 비로소 지속 가능한 지구촌의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데서 시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포스트 코로나를 이야기하는데 제가 기후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아서 조금 의아해하실지 모르겠는데요, 코로나-19 사태와 기후위기 간에 생각보다 훨씬 밀접한 관계가 있는 거 같습니다. 첫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게 기후위기로 촉발된 생태계 교란으로 인해서 금번에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했다는 주장입니다. 이거는 김회권 교수님도 잠깐 언급을 하셨는데요, (리프킨이) 최근에 국내 저널리스트와 전화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코로나-19의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냐고 물었을 때 단번에 기후변화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물순환이 바뀌고, 지구 상의 물순환이 바뀌고,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파괴되면서, 야생동물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인간 곁으로 왔는데, 그래서 야생동물들에게 있던 그 바이러스가 인간 몸으로 옮겨지고, 그리고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전 세계로 퍼지게 되었다는 거거든요.

리프킨의 설명을 그대로 다 받아들이기에는 저도 아직은 잘 확신이 서지는 않습니다. 너무 거대한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이야기했기 때문에 그런데요. 흥미로운 점 중에 하나는 그 유엔 산하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가 있습니다. 그 협의체에서 1.5도 보고서를 냈는데, 그 보고서에도 보면은 지구온난화로 인해서 말라리아, 콜레라 같은 전염병이 유례없이 확산될 가능성이 많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일본뇌염이 일본과 우리를 위협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리프킨의 이런 주장을 우리가 그냥 단순히 사변으로 치부하지 않고, 좀 더 진지하게 경청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코로나-19 사태로 인해서 지구촌 전체가 오밀조밀하게 아주 긴밀하게 연결된 생명의 그물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간 아닌 다른 어떤 생물종에서 생겨난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겨지고 난 다음에는 세계화로 인해서 촘촘하게 연결된 교통망을 통해 전지구에 순식간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인간 세상이, 그리고 인간과 자연과의 세상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초 관계망의 세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는데요. 근데 이것이 흥미롭게도 교회도 여기서 예외가 아닙니다. 생명의 그물망 속에 교회도 있고, 바이러스는 다른 어떤 담보다 교회 담벼락을 쉽게 뛰어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촘촘하게 연결된 생명의 그물망이 단순히 인간과 인간 사이, 인간과 자연의 생물 사이에 뿐만 아니라 지구촌의 모든 생물과 지구환경 사이의 관계에도 적용이 됩니다. 코로나-19 위기에서 제가 가장 주목했던 것 중에 하나는 지구 전역에서 인간의 활동이 멈추니까 지구가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봄에 우리가 오래전, 수십 년 전 어린 시절이 봤던 그런 맑은 하늘을 오랫동안 보고 멋진 구름들을 오래 즐길 수 있었거든요. 인도의 한 해변에는 멸종 위기에 있던 바다거북 수십만 마리가 나와서 알을 낳았습니다.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졌던 베네치아 운하, 이후에 다시 얘기하겠지만, 운하가 맑아지더니 물고기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산업화 이후에 인간의 왕성한 활동이 지금의 기후위기를 촉발했다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서 우리가 안식에 들어가게 된 거예요. 이 강요된 안식, 중단된 인간 활동이 기후회복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 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제 아마도 여기 계신 분 모두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 사태로 겪는 많은 불편함 때문에 과거의 일상을 그리워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앞서도 많은 분들이 이야기했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된 다음에 우리가 코로나-19 이전에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전망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일상, 뉴 노멀 (New normal)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근데 다른 한편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과거로 갈 수 있다 하더라도 정말 돌아가고 싶은가, 이런 질문을 한 번 던져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꽤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이제 경제활동이 멈추고, 그로 인해서 많은 피해가 생기기는 했지만, 동시에 지구 생태계가 살아나는 반대급부 현상을 보면서 우리가 너무 경제성장 이데올로기를 쫓아갔던 것은 아닌가, 이데올로기가 우리의 삶을 암암리에 파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반성해보는 계기도 됩니다. 감염병 확산이 우리에게 안식을 강요했어요. 인간의 안식을 강요하니까 그와 더불어 지구촌 생태계도 함께 안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이제 하나님께서 하셨던 말씀, 땅을 쉬게 하라 말씀하시면서 땅의 안식을 명령하셨던 하나님의 계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코로나-19 이후에 우리가 일상을 생각할 때, 그전에 일상으로 무조건 돌아가자고 생각할 게 아니라, 일단은 이제 치명적 바이러스가 종식이 되어야 되겠죠. 그리고 더불어서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는 무조건적인 성장 이데올로기의 중식도 전제하면서 새로운 일상을 한 번 꿈꿔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기서 이제 코로나-19 새로운 일상을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데요, 앞에서의 주장과 일맥상통합니다. 우리의 미래는 운명처럼 주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래 모든 일을 결정해 놓고, 그 길로 역사를 인도하시는 분도 아닙니다. 예언자는 미래의 일에 이미 결정된 미래의 일을 예측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미래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이 이웃과 더불어 함께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코로나-19 이후에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 가야 하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우리 인간에게 있다, 특히 우리 교회에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생각할 때, 교회의 선교가 새로워질 수도 있고, 거기에서 우리가 이 위기의 세계를 향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힘도 생기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미래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한 사람의 힘이 미약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한 사람의 작은 실천의 큰 변화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마스크 대란을 겪었는데요, 어떤 약사 한 분이 마스크 5부제를 제안했습니다. 그게 정부에서 받아들이니까 이 대란이 해결되잖아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거는 어떤 면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입니다. 아이디어가 이 코로나-19 위기뿐만 아니라 기후위기도 극복할 수 있는 실마리를 주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코로나-19 이후의 새로운 미래를 생각할 때 그런 면에서 이전의 과거가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생각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새로운 미래를 생각할 때는 기후위기에 대해 조금 더 함께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게 제가 여러분에게 강조하고 싶은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이게 좀 막연하게 들릴 수 있을 것 같아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일상의 구체적인 모습에 대해서 한 가지 사례를 이야기하고 이야기를 마무리하려고 하는데요. 지난 5월 말에 중앙일보에 실린 기사 내용입니다. 최근 코로나 사태로 관광업계가 충격을 받았잖아요? 그중에 관광객이 현저하게 줄어든 베네치아 이야기를 하면서, 매년 수천만 명이 거기를 찾아온 거예요. 골목길을 가득 메우고, 그리고 곤돌라가 운하를 다니면서, 기름을 가득 채우곤 했었는데, 이제 관광객이 줄어드니까 골목길이 평안을 찾았어요. 그리고 운하에 맑은 물이 생기고, 물고기가 돌아왔습니다. 이참에 베네치아 당국에서 여행자 수 자체를 줄이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얘기해주더라고요. 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여행자에게는 보다 느리고 친환경적인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현지인들에게는 삶에 위협을 받지 않을 만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설명을 하거든요. 기자가 베네치아 외에도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등 세계 곳곳 관광지에서 지속 가능한 관광업에 대해서 고민 중이라는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관련해서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전해주었는데요. 가디언즈에서 이야기를 합니다. 앞으로 여행 산업은 좀 더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을 합니다. 여행자 개인은 물론이고 지역 사회와 지구 전체 환경을 향해 더 나은 여행에 대해서 여행객들이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얘기를 하는 거죠. 여행을 할 때 친환경적인 교통수단 자전거를 통해서 자전거를 이용하는 여행이나, 아니면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한 곳에 오래 머무르는 여행이 트렌드가 될 거란 얘기를 합니다.

성지순례를 가면은 곳곳에 가서 사진 찍고 또 다른 곳으로 가고 하는데 이 이동 과정 가운데 탄소가 엄청나게 배출이 되거든요. 근데 그러지 않고, 제 개인적으로는 갈릴리 호수에 앉아서 오래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거기에 머무르면서 묵상하는 시간이 가져다주는 은혜가 있었는데, 그런 식의 여행이 트렌드가 될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여행산업의 변화에 대한 이러한 전망은 제가 생각할 때 이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대처하면서 새로운 일상을 재구성하는 것과 관련해서 중요한 통찰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 사태가 가져다준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운하, 이것을 우리가 다시 포기하고 과거로 돌아가면 너무 안타깝잖아요. 인도의 맑은 공기, 우리나라의 맑은 봄 하늘을 우리가 포기하고,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너무 아깝잖아요. 우리가 지금처럼 불편한 삶을 감수하더라도, 코로나-19가 가져다준 이 예기치 않은 축복을 우리가 소중하게 시키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려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우리가 불편합니다. 그것 때문에 불편하지 않은 삶으로 돌아가자, 이게 아니라 더 중요한 가치, 편리함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 하면, 코로나-19는 당장에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니까 우리가 즉각적으로 불편을 감수하는데, 기후위기는 이것보다 훨씬 몇천 배 더 위험한 위기거든요. 더 위협적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서서히 다가오니까 우리가 경각심을 갖지 않고, 준비를 하지 못합니다. 코로나-19보다 훨씬 더 위험한 기후위기를 우리가 직시하고,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 불편한 삶을 감수하고자 하는 노력들의 지금부터 시작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말하자면 지금보다, 어쩌면 지금 코로나 사태, 지금보다 더 느려질 수도 있고 더 불편해질 수도 있지만, 나 자신과 이웃과 자연과 하나님이 창조하신 지구 전체를 소중하게 여기는 삶의 방식을 일상에서부터 구축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또한 개인의 일상뿐만 아니라 우리 인류의 문명, 산업, 생태계, 여행산업을 필두로 산업생태계 전체를 새롭게 재구조화하는 그린 뉴딜에 대한 최근의 담론, 이런 데도 우리 교회가 관심을 가지고, 선교적인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동참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제가 이제 코로나-19와 기후위기와 같은 전 지구적 재앙이 위협을 생각할 때 노아의 대해서 좀 생각을 하거든요. 이제 결론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된 선견지명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생각이 들어요. 자연재앙이 도래하는 것을 미리 내다본 지혜자였습니다. 그래서 배를 만드는데, 이 배가 가족만 살기 위한 배였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을 살리고 싶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많은 사람들에게 배를 만들라고 권면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그 말에 경청하지 않았습니다. 그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그리고는 결국엔 심판을 받고, 하지만 노아를 통해 이전 인류가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살아남을 생명이 길이 개척이 됐거든요.

오늘날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로 전지구를 위협하는 위협 앞에서 생명의 길을 모색할 책임이 우리 교회에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구체적으로 이제 한 가지만 제안을 드리면 안식일에 대해서 우리가 조금 더 묵상해보면 좋겠다. 제가 앞서 여행업을 이야기하면서 강요된 안식, 인간에게 강요된 안식이 생태계에 가져다준 안식과 회복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안식일을 지키는 것, 오늘날 각박하고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 안식년을 지키는 것, 나만 지키는 게 아니라 우리의 직장 동료들도 그리고 이 자연 세계도 함께 안식년을, 안식을 지키도록 명령하신 하나님의 계명에 대해서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하다 보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새로운 일상을 우리가 상상해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것으로 제 발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Question 3-1.

교수님 말씀하실 때, 우리가 지금까지 쓰지 않았던 몇 가지 단어들, 좀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요런 부분, 좀 소개 설명을 좀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일단 우리가 좀 안 쓰던 말 중에 요즘 많이 쓰는 말이 인류세라는 단어가 있는데요, 인류세가 무엇인지 조금 자세하게 한번 좀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Answer.

지질학적인 연대 구분에 따르면요, 예를 들면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처럼, 이제 더 큰 단위의 지질학적인 구분이 있고, 홍적세처럼 그 안에서 세부적인 구분이 있는데요. 그중에 하나로 인류세라는 것을 최근에 이제 도입을 하게 된 거예요.

2000년대 화학자 한 분이 이 말을 도입을 하면서, 지질학적인 연대니까 지구환경 변화의 특별한 기점을 나누어서 이제 시대 구분하는 거잖아요, 근데 인간이 출연하고, 그동안에는 특별한 지구 환경 변화가 없었는데, 최근 들어서 인간이 이제 과학기술문명을 통해서, 또 인구가 급속하게 확장되면서, 지구환경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지구 자체에 변화가 생겼다. 그런 면에서 인류가 지구 자체의 변화를 가져다주는 새로운 시기가 출연했다고 해서 이 시대 이름을 인류세라고 이름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그 명칭이 언제부터 적용되느냐, 이런 거보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중요한 거는 그만큼 우리 인간의 능력이 커졌다, 인간의 책임이 커졌다, 이런 것들을 깨닫게 해 주는 중요한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Question 3-2.

교수님 말씀 듣다 보니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가 여행을 가서 돈을 지불하고, 거기 가서 우리가 누리잖아요. 사실 우리가 누리는 만큼 거기에 땅이라든지, 환경이라든지, 그곳에 사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혹은 그 땅에 불편을 우리가 끼쳤다. 우리가 누리는 만큼 사실은 불편하게 했다, 그런 생각도 하게 되거든요. 그러면서 우리가 돈을 냈으니까 내 맘대로 모든 것들을 누리겠다가 아니라, 우리도 돈을 내지만 불편하고, 또 우리가 간 쪽도 약간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서로가 조화롭게 사는 그런 것이 필요하다, 하는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질문도 이런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교수님의 말씀을 듣다 보니 인간의 활동이 어느 정도여야 할까요? 개발과 보존의 관점에서 다가옵니다. 인간의 활동을 아주 멈출 수 없지만, 지구의 모든 생물과 함께 공존한다는 개념에서 어느 선이 적정할까요? 교수님의 의견을 좀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nswer.

아주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질문인데요. 이 부분에 있어서 제가 이제 아주 명확한 대답을 갖고 있다고는 말씀드리기는 어려운데, 그냥 두 가지, 우리가 가지 말아야 할 길에 대해서 일단은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처럼 우리가 과하게 소비하고, 과하게 생산하고, 이렇게 우리의 어떤 육체적인 탐닉을 위해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지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것을 부추기고, 그런 걸 조장하는 과학 기술의 발전이나, 그런 인간의 활동은 어느 정도 자재와 절제가 필요하다는 거고요.

두 번째는 그렇다고 자연으로 돌아가자, 이것도 불가능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산업화 이전으로 돌아가는 건 더욱 불가능하다고 생각이 드는 거고, 지금의 과학기술문명을 어떻게 해서 하나님 나라 가치에 맞게끔 선도해 나갈 것인가를 우리가 고민해 가는 게 필요하다. 생명, 정의, 평화의 관점에서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에게 주신 지혜를 활용하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고, 그게 에덴동산을 가꾸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오늘날 우리가 복원해서 실천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적정기술을 통해서, 첨단기술의 적정기술을 통해서, 약자들과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누리도록 만드는 거라든지, 아니면 그린 뉴딜정책 같은 걸 통해서 환경을 보전하면서도, 우리가 지금보다 조금 불편하지만 그렇다고 산업화 이전처럼 불편해지지 않거든요. 그러면서 조금 느리게, 조금 불편해지지만, 그러면서 우리가 속해 있는 생명의 그물망을 소중하게 여기는 삶, 그런 것들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또 다른 면에서는 불편함이 우리에게 더 깊은 삶에 대한, 인생에 대한,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대한 통찰과 묵상을 가능하게 해 줄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 면에서 제가 정답은 모르겠지만, 그럼 방향을 우리가 개척해 나가야 된다, 그걸 우리 함께 고민해야 된다, 그런 원론적인 답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uestion 3-3.

마지막 질문인데 될 것 같은데요, 교수님께서 이제 말씀하신 내용 중에서 지구 전체가 생명의 그물망 속에 들어 있다, 동시에 교회도 이 생명의 그물망 속에 들어 있고, 교회가 예외가 아니다, 이런 말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가 이런 생명의 그물망 속에서 시급히 오늘의 이 세상 속에서 해야 되는 어떤 역할을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지 교수님의 생각을 한번 밝혀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Answer.

일단은 이렇게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생명의 그물망 속에 있으니까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즉각적으로 세상에 영향을 주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 교회에 영향을 준다고 이야기할 수 있거든요. 교회에서 바이러스 감염이 확산되니까, 세계도, 세상도 영향을 받는 거고, 세상에서 확산된 바이러스가 순식간에 교회에 들어오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는, 만일 그걸 생명이라고 얘기한다면, 교회가 생명의 근원이 되어야 한다. 바이러스의 근원지가 되거나, 죽음을 양산하는 근원지가 아니라 생명을 퍼뜨리는 근원지가 될 수 있도록 교회를 리모델링하는 게 절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고, 아까 말씀드린 새로운 일상, 아니면 안식일 계명과 관련하여 생각한다면, 교회가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킴으로서 안식 공동체가 됨으로써 이 시대의 주류 문화에 저항하고, 대안 문화를 창출하고, 그런 면에서 대안적인 삶의 길, 생명의 길을 세상에 보여 주는 거, 그게 이제 지금의 위기 세상 가운데 빛과 소금이 되는, 교회가 빛과 소금이 되는 길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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