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을 준비한 사람들 | 마리아

2020년 11월 29일 청년플러스 주일예배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누가복음 1:30~38)

 

Intro

오늘도 청년플러스 예배에 함께해주신 모든 지체들께 감사합니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세상이 너무 복잡하네요. 안 그래도 2단계 격상된 후에 여러 가지로 불편한 부분이 많았는데, 이제 2.5단계까지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바라기는 이 상황이 너무 오래 지속되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이 때문에 삶이 힘들어지는 분들이 많은데, 잘 버틸 수 있도록 기도로 함께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아픈 분들이 많다는 이야기인데, 확진자들이 빠른 시간 안에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확진자는 피해자라는 인식을 함께해주셨으면 해요. 그분들이라고 걸리고 싶어 걸렸겠어요? 병에 걸린 환자잖아요. 혹시나 그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았으면 좋겠고요, 그들도 빨리 회복되고 삶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과정이 너무 힘들지 않도록 기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먼저 그들을 품고, 격려하고, 위로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맞이하는 성탄절, 대강절이네요. 오늘부터 대강절,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기억하고 준비하는 기간이죠. 그래서 대림절은 사실 예수님의 탄생을 준비하기보다는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게 맞아요. 예수님의 생일잔치를 준비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물론 성탄절은 예수님의 생일에 대한 기념일이 맞지만, 이런 성탄절과 그 앞에 4주간 진행되는 대림절의 신앙적 의미는 “재림”에 맞춰져야 하는 게 맞습니다.

그래서 이번 대림절에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그 과정에 함께 참여했던 사람들, 그 오시는 길을 준비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 길에 동참했던 손길들을 살펴보려 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준비했었고, 어떤 과정을 통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려 해요. 그리고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그것들을 감당했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지금 내가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한다고 할 때, 무엇을 신경 써야 하고, 어떤 것을 생각해보아야 하는지 한 번 돌아보려 합니다.

 

후지타 사유리

오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연예인 한 사람을 생각해보려 합니다. 바로 후지타 사유리 씨예요. 이번에 자발적 비혼모로 혼자서 출산의 과정을 감당했죠. 이 사건으로 무척 유명해졌어요. 안 그래도 솔직한 자기 발언으로 유명했는데, 임신과 출산까지도 자기만의 분명한 확신에 따라 행동하는 걸 보면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유리 씨 때문에 알게 된 사실이 몇 가지 있는데, 우리나라는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정자 기증이 안 된다고 하네요. 결혼한 부부에게는 불임에 대한 시술로 가능한데, 혼자서는 불가능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사유리 씨의 경우도 일본에 건너가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제가 검색으로 확인해보니 사유리 씨가 79년생이더라고요? 그런데 병원에서 검사를 하다 보니 신체 나이가 40세 후반이었다고 하죠? 그래서 이런 결정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인터뷰에서 하는 것을 봤어요.

그 인터뷰에서 참 흥미로왔던 것이 사유리 씨에게 애인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왜 그 애인과 결혼을 하고, 출산을 계획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더라고요. “아이를 갖기 싫다는 상대방에게 임신을 요구하는 것도 성폭력”이라고요. 그래서 혼자 이 과정을 감당하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아무튼 사유리 씨의 이번 결정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더군요. 지금까지 우리가 가져왔던 가정에 대한 생각에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기도 하고요, 또 말씀드린 것처럼, “아이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결혼과 출산, 육아를 요구하는 게 성폭력으로 해석되는 사회에 대한 생각도 해보게 되었고요. 무엇보다 사유리 씨의 부모님이 가장 놀라웠어요. 사유리 씨가 혼자서 아이를 낳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가 동의했다고 하더라고요. 자기 딸이 행복한 길이라면 자신은 인정할 수 있다고 말이죠. 예전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했을 거예요. 어디서 그런 생각을 해요? 그런데 정말 세상 많이 변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그래도 사유리 씨는 혼자서 아이를 출산했지만, 출산을 혼자서 한 거지, 아버지가 없는 건 아니에요. 누군지 모르지만, 정자를 제공한 사람이 있죠. 사람들이 이 사실을 다 알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납득을 하죠. 누군지는 모르지만, 아버지라는 존재가 있어요. 물론 평생 동안 그게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겠지만 말이죠.

만약에 이게 앞뒤 관계가 조금 바뀌면 이런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사유리 씨가 임신을 먼저 했고요, 임신한 상태로 사람들 앞에 나왔어요. 그리고 자기는 혼자서 아이를 낳겠다고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사람들이 사유리 씨를 대하는 모습이 많이 바뀌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디서 맘대로 행동하다가 임신해놓고는 그걸 멋지게 포장하려고 노력한다고 말이죠. 충분히 이해가 되시죠? 어느 날 갑자기 임신을 했어요. 그리고는 딴 소리를 해요. 이렇게 사람들은 받아들였을 거예요. 그리고 사람들은 사유리 씨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늘어놓겠죠. 네. 지금도 그렇습니다. 사유리 씨처럼 미혼모가 아닌 비혼모로서 자리 잡는 건 정말 쉽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벌써 이천 년 전에, 이런 미혼모가 있었다는 겁니다. 네. 바로 마리아입니다.

 

마리아의 이력서

사실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전승이 있기는 합니다만, 검증할 수 없는 문서들이 많기 때문에 그것들을 문자 그대로 다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아요. 그렇지만, 우선 그가 어떤 상황에서 자랐을지, 그리고 그가 어떻게 예수님의 어머니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조금 생각해보도록 하지요.

우선 마리아가 어느 지파 출신이었는지도 사실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마태복음에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의 족보가 나오죠. 그리고 그 족보는 요셉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유다 지파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 1절과 2절이에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마태복음 1:1~2)

그런데 마리아는 달라요. 마리아에 대해서 나와있는 구절은 성경에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인정하지는 않지만, 외경이라는 게 있죠. 그중에 야고보 복음서라는 게 있는데요, 우리가 이야기로 들은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과 마리아의 이야기는 대부분 여기에 근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이 많은 요셉과 어린 마리아의 이야기나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예수님이 처음 탄생한 곳이 동굴이었다는 이야기는 야고보 복음서에 나오는 이야기들이에요. 그런데 이 야고보 복음서가 흥미로운 이유는 마리아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밝히고 있다는 겁니다. 이 야고보 복음서에 보면, 마리아의 아버지는 요아킴, 어머니는 안나로 소개하고요, 이 두 사람도 아이가 없었다고 해요. 그러다가 세례 요한의 경우와 비슷하게 하나님께 은혜를 받아서 마리아를 출산하게 되었다고 하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마리아가 다윗 족속, 그러니까 유다 족속이었다는 걸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흥미로운 건 마리아는 또한 레위지파와도 연결이 된다는 거예요.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요, 누가복음 1장에 보면 세례 요한의 출생을 다루고 있는데요, 세례 요한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이 사가랴와 엘리사벳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레위지파라고 소개를 해요. 누가복음 1장 5절이에요.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누가복음 1:5)

이게 왜 중요하냐 하면, 누가복음에서 마리아에게 예수님을 낳을 거라는 사실을 가브리엘이 이야기하고 나서, 그에 대한 증거 중에 하나로 엘리사벳이 세례 요한을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누가복음 1장 36절이에요.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누가복음 1:36)

엘리사벳을 친족이라고 표현합니다. 물론 이에 대해서 다른 성경은 친척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아무튼 앞뒤의 이야기를 연결했을 때, 가장 납득할만한 설명이 마리아의 아버지는 유다 지파였고, 어머니는 레위지파였던 것이 아닐까 하는 거죠. 그래서 엘리사벳은 외가 쪽이었을 꺼고, 친가 쪽으로는 유다 지파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는 거예요. 아무튼 좀 복잡하지만 따지자면 그렇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서 여러 다른 논란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이 부분을 제가 먼저 이야기하는 이유는 마리아가 생각보다 신앙적인 훈련이 잘 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말은 마리아가 순결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게 아니라, 천사 가브리엘이 자신에게 와서 예언한 게 어떤 의미인지 분명하게 알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예요.

 

남편 없는 출산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요, 율법에 아버지를 모르는 임신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마리아가 분명히 알았을 거라는 겁니다. 구약시대 율법을 보면, 성적인 문란함에 대해서는 아주 강력하게 처벌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20장 10절이에요.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레위기 20:10)

그렇기 때문에 처녀의 경우는 결혼 전에 임신을 하지 않아도, 지금의 표현으로 하면 혼전순결을 잃었을 경우 돌에 맞아 죽을 수 있습니다. 신명기 22장 20절에서 21절이에요.

그 일이 참되어 그 처녀에게 처녀의 표적이 없거든 그 처녀를 그의 아버지 집 문에서 끌어내고 그 성읍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 지니 이는 그가 그의 아버지 집에서 창기의 행동을 하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행하였음이라 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희 가운데서 악을 제할지니라 (신명기 22:20~21)

물론 이게 사람에 따라 가슴 아픈 경우가 생길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성폭행을 당했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율법은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히 구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주고 있습니다. 신명기 22장 25절과 26절이에요.

만일 남자가 어떤 약혼한 처녀를 들에서 만나서 강간하였으면 그 강간한 남자만 죽일 것이요 처녀에게는 아무것도 행하지 말 것은 처녀에게는 죽일 죄가 없음이라 이 일은 사람이 일어나 그 이웃을 쳐 죽인 것과 같은 것이라 (신명기 22:25~26)

쉽게 말하면 이런 거죠. 여자를 들에서, 그러니까 야외에서 만나서 성폭행했어요. 여자는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죠. 그러면 이건 누구의 문제냐 하면 남자의 문제라는 겁니다. 여성은 피해자인 거예요. 그러니까 남자만 죽입니다. 그것도 돌로 쳐서 죽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 여자가 들에서 그런 게 아니라 마을 안이라든지, 사람이 있는 곳에서 이런 일을 당했을 때는 어떨까요? 이 때는 둘 다 죽입니다. 왜냐하면, 여자도 자신을 보호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신명기 22장 23절에서 24절입니다.

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한 후에 어떤 남자가 그를 성읍 중에서 만나 동침하면 너희는 그들을 둘 다 성읍 문으로 끌어내고 그들을 돌로 쳐 죽일 것이니 그 처녀는 성안에 있으면서도 소리 지르지 아니하였음이요 그 남자는 그 이웃의 아내를 욕보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가운데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신명기 22:23~24)

물론 이건 지금 상황하고 1대 1로 매칭 시키기에는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죠. 그러나 이 본문들이 보여주는 생각은 분명한 거예요. 간음에 대해서, 그리고 성적 문란함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대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봐야 할 것이 지금 생각한 이 부분은 여성이 약혼한 후라는 거예요.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이 당시 약혼을 했다는 것은 결혼을 한 것과 동일하게 생각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약혼한 사람의 문제는 맨 처음 레위기 20장 10절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개념에서 처리를 했다는 거죠. 결혼한 유부남, 유부녀와 동일한 관점으로 대우했다는 겁니다.

 

험난한 결정

자, 그러면 생각해보죠. 지금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한, 그러니까 약혼한 사이입니다. 결혼을 약속했어요. 그런데 그런 와중에 천사가 나타난 거죠. 그리고는 마리아에게 임신을 예언해요. 뭐 이것까지는 좋아요. 그럴 수 있어요. 하나님이 갑자기 어떤 계획을 실행하겠다고 말씀하실 수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걸 마리아가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느냐, 이 문제가 남는 거예요.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고 믿을까요? 사람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천사가 자기에게 찾아와서 임신할 거라고 말했다고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아, 그렇구나, 천사가 와서 네가 임신할 거라고 예언했고, 그 예언대로 네가 임신을 했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마리아를 위해주고, 격려하고, 그리고 출산까지 잘할 수 있게 도와줄까요? 마리아가 이 이야기를 자기 부모님께 가서 이야기하면, 아, 네가 이렇게 하나님께 선택받은 여인이 되었구나, 이제부터 몸 관리 잘하고, 하나님의 멋진 아들을 낳을 수 있게 잘 준비하라고 이야기해주셨을까요? 아니면 자기가 약혼한 요셉에게 찾아가서, 하나님이 나를 선택해서,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을 낳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고 이야기하면, 요셉이 마리아를 보면서, 내가 정말 축복받은 사람이네, 하나님이 선택할만한 사람을 내가 선택했다니, 내 눈이 정말 높다, 이러면서 마리아를 아껴주고,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줄까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아마 지금이라면 바로 정신병원에 끌려갈 거예요. 이 아이가 환청을 듣고, 환상을 본다고요. 아이가 혹시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하겠죠. 혹은 종교에 너무 심취하더니 이제는 미친 소리를 다 한다고 이야기할 거예요. 어디 이상한 이단이나 사이비에 빠진 건 아닐까 걱정을 하겠죠. 제대로 된 교회인지, 혹은 종교인 지부터 파악하려 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잘못된 신앙에 빠진 불쌍한 인생으로 봐주기나 하면 다행한 일이 아닐까 싶어요. 그러면 그나마 돌봄이라도 받을 테니까요. 그런데 혹시나 이런 반응에 대해, 그게 아니라고 그들의 말을 부정하고, 자기가 맞다고 자꾸 이야기하면, 아마 사람들은 이 사람을, 그러니까 지금 상황에서 이야기하면 마리아를 어디에 가두자고 할지도 몰라요. 그리고 바로 임신중절 수술시키겠죠. 정말 어디서 어떤 사람의 아이를 가졌는지도 모르는데, 거기다가 애 엄마는 이렇게 제정신이 아니니 어떻게 출산을 하라고 하겠어요? 아마 아이 엄마의 비정상적 행동을 근거로 들어서라도 아이를 지워버릴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그런데 지금 마리아의 상황은 현재가 아니에요. 이천 년 전이에요. 구약의 율법, 모세의 율법이 지켜지던 때라고요. 그때 마리아가 임신을 했다는 거, 약혼만 했지 결혼도 아직 안 한, 성경의 표현을 그대로 쓰자면, 남자를 아직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임신을 했다는 건, 돌 맞아 죽을 일이라고요. 지금 사람들이 끌고 나가서 돌로 쳐 죽인다고 해도 아무 말 못 할 상황이라고요. 그나마 요셉이 대단한 거예요. 이걸 공론화시키지 않고, 그냥 조용히 덮으려고 하잖아요. 이게 이런 율법이 있거든요. 신명기 24장 1절이에요.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신명기 24:1)

그냥 조용히 덮자는 거예요. 그냥 내보내고 끝내겠다는 거예요. 이게 마태복음 1장의 상황인 겁니다. 1장 18절과 19절이에요.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마태복음 1:18~19)

정말 그나마 요셉이 좋은 사람인 거예요. 그나마 사람이 정말 성품 좋은 거예요. 마음 좋은 겁니다. 이건 그냥 끌고 가서 돌에 맞아 죽게 하는 게 맞는 거예요. 그걸 가지고 요셉에게 이야기할 사람 아무도 없어요. 요셉을 위로하면 위로했지, 마리아에 대해서 아무도 좋은 말 안 할 거예요. 그게 바로 지금 상황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 그럼 생각해보자는 거예요. 마리아는 이걸 알았습니다. 마리아는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런 일이 일어날 거예요. 지금 천사 가브리엘은 이런 일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고, 이대로 일어날 거라고 예언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나마 정말 요셉의 성품을 알아서 혹시나 마리아가 자기가 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치죠. 그다음은 어쩔 건데요? 사람들이 몰라요? 사람들이 바보예요? 사람들이 날짜 계산 못 해요? 아니에요. 자기가 임신했다는 거 다 알 거예요. 지금 자신의 처지는 엘리사벳하고 달라요. 세례 요한을 낳은 엘리사벳은 결혼도 했어요. 아이를 못 가졌을 뿐이에요. 다른 사람들에게 엘리사벳의 이야기는 축복이에요. 은혜예요. 모든 사람의 격려 가운데 출산을 준비하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는 지금 달라요. 목숨이 위태해요. 살아있는 게 신기해요. 그리고 설령 그런 문제는 넘어갈 수 있다고 해도, 평생을 더러운 여자로 살아야 하는 거예요. 평생을 어디서 못 돼먹은 여자로, 몸이나 함부로 굴리는 여자가 되어야 하는 거예요. 어디서 아빠도 모르는 자식 낳아서 키우는 나쁜 년이 되는 거라고요.

요셉에 대해서는 칭찬을 하겠죠. 속도 없고, 벨도 없고, 어디서 아빠도 모르는 자식 키워주는 마음 좋은 남자가 될 수 있을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달라요. 이건 정말 나쁜 년이에요. 정말 나쁜 년이라구요. 어디서 뻥을 쳐요? 어디서 함부로 하나님을 팔아요? 어디서 자기가 잘못해놓고, 하나님께 책임을 돌려요? 그리고는 뻔뻔스럽게 요셉의 아들로 키워요? 사람들이 이걸 가지고 한 번 이야기하고 말겠어요? 아니에요. 아마 마리아 죽을 때까지 이야기할 거예요. 죽고 나서도 이야기할 거예요. 자기는 평생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여자로 살아야 하는 거예요. 그 모든 수치와 모욕, 모든 사람들의 시선, 멸시를 감당해야 하는 거예요. 그렇게 살아야 하는 삶이 눈 앞에 보이는 거예요. 그게 이제 자신에게 놓인 운명이라는 걸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수많은 생각 중에 마리아는 대답하는 거예요.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누가복음 1:38)

 

지금도 찾으십니다

사랑하는 청년플러스 여러분. 예수님의 오심은 그냥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까지 우리가 아는 것처럼 예수님도 수많은 것들을 포기하셨습니다. 하늘 보좌를 버리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시기까지 모든 것을 내려놓으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에서 이 땅에 사생아의 몸으로 오셔야 하는 결단은 절대 쉬운 과정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면 안 됩니다. 이게 끝이 아니에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위해서는 마리아의 결단도 필요했다는 겁니다.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인생을 거는 사람이 필요했다는 거예요. 그걸 감당해줄 사람이 필요했다는 겁니다. 목숨을 걸고, 인생을 걸고,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그 누군가가 필요했다는 거예요. 그 누군가가 있을 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수 있었다는 거예요. 그 사람의 헌신과 순종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선포되고, 이루어질 수 있고, 그 구원의 계획이 이 땅에 드러날 수 있었다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해보면, 하나님에게 있어 필요했던 사람은 순종의 사람이었던 거에요. 마리아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마리아와 같이 말씀을 받고, 그 말씀에 자신을 내놓는 누군가가 필요했던 거죠. 어쩌면 수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은 메세지를 보냈을지 몰라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임하기 원하셨는지 몰라요. 그 음성에 반응해주기를 원했는지 몰라요. 어쩌면 마리아보다 더 신앙이 뛰어나다고 말을 들었던 사람이 있었을지 모르고, 마리아보다 지식이 뛰어나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마리아보다 모든 면에서 더 나은 사람들은 그 시대에도, 그리고 온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수없이 많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마리아가 선택된 이유는 순종이라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선택하신 이유는 그의 고백이었다는 거에요. 마리아의 고백이 필요했다는 겁니다.

그래요. 이건 지금도 똑같습니다. 지금도 동일합니다. 이 원리는 바뀌지 않아요. 지금도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헌신이 필요해요. 지금도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선포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순종이 필요해요. 자신의 목숨을 건 포기가, 자신의 삶을 내려놓는 결단이 필요해요. 평생을 시달리고, 고통받고, 그로 인해 아파해야 한다고 해도,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드리는 그런 결단이 있을 때에만, 지금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드러날 수 있다는 거예요.

생각해보세요. 그런 사람 없이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때는 없습니다. 목숨을 걸고 개혁을 외쳤던 루터가 그랬고요, 살해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복음을 외쳤던 수많은 제자들이 그랬고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선교사들의 결단을 바탕 삼에서 이 땅에까지 복음이 선포된 거잖아요? 단지 한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도, 한 공동체의 성장을 위해서도, 그를 위해 목숨을 던지고, 삶을 던지고, 꿈을 포기했던 그 누군가의 헌신과 희생이 필요했다고요. 그렇게 이 땅의 교회들이 성장했고, 부흥했잖아요? 가족도 버리고, 꿈도 버리고, 삶도 버리고,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목회자들을 통해서 이 땅의 교회가 성장했었다고요. 그런 성도들을 통해서 한국교회가 부흥했다고요. 자기 먹을 것 못 먹고, 자기 누릴 거 못 누리고, 그것 다 하나님께 바치고, 내어놓는 손길을 통해서 교회가 성장했다고요. 그런 것 없이 기독교가 부흥하고, 말씀이 선포되고, 구원이 이 땅에 증거 된 적은 한 번도 없다고요.

네. 그래서 지금도 찾으신다고요. 지금도 찾고 계시다고요. 그 한 사람, 그 한 사람을 찾으신다고요. 그 한 사람만 있으면, 그 한 사람만 하나님 앞에 자신을 희생하면, 하나님은 그 한 사람을 통해서 그 누구도 꿈꾸지 못했던,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했던 크고 놀라운 일을 이루신다고요. 그런데, 미안해요. 그 한 사람이 없어요. 그 한 사람이 필요한 건 알겠는데, 나는 아니에요. 그 한 사람을 위해 기도는 하겠는데, 내가 그 자리에 가기는 싫다고요.

 

마무리하면서

절대 마리아를 신격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신앙적 결단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이유는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믿음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이 땅에 임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땅에 오시기를 원해요. 이 땅에 자신을 드러내기를 원하세요. 그리고 그를 위해 자신을 내놓을 누군가를 찾으십니다. 지금 이 시대, 이 사회의 마리아는 누구입니까? 누구여야 합니까?

 

생각할 질문들

* 지금 만약에 마리아와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누군가 말한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 지금 만약에 나에게 마리아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전달할까요?

* 오늘 나에게 하나님께서 부탁하시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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