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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누가복음 17:7~10)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우리는 어떤 책임이나 지위를 맡게 되었을 때,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우리는 어떤 사람이 리더의 자리, 아니 꼭 리더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떤 일을 맡는다고 했을 때, 어떤 기준에서 그 사람을 판단하나요? 여러가지 기준이 있을 겁니다. 인성, 성품과 같은 사람의 됨됨이도 중요하죠. 그가 가진 배경지식이나 경험도 중요합니다. 혹은 그가 지금까지 해왔던 이력도 만만치 않게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가 가진 능력도 당연히 중요하죠.

아마 이건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예를 들어 이번에 주일학교 교사를 맡게 되었다고 합시다. 혹은 순장, 회장이나 부회장을 맡게 되었다고 생각해보자구요. 네. 지금 절대 하라는 이야기 아닙니다. 부담갖지 않으셔도 되구요. 물론 생각도 하시 싫으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선 한 번 상상해보자구요. 그 외에도 우리 집사님, 권사님들 같으면 부장, 차장, 혹은 지도권사의 역할을 맡게 되실 수도 있겠죠.
그 때 우리는 어떻게 기도하나요? 주변 사람들에게 기도 부탁을 할 때, 뭐라고 기도 부탁을 하시나요? 아마 대부분은 이렇게 기도부탁을 하실 꺼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부족한데, 그 자리를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능력을 달라고 기도해 주세요.”, “제가 잘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제가 그런 그릇이 안 되는데,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혹은 이렇게 부탁하실 수도 있을 꺼에요. “저를 하나님께서 잘 사용하셔서, 좋은 결과를 이룰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그렇죠?
뭐 이 외에도 다양하게 기도 부탁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마다 빠지지 않는 것은 나의 부족함이고, 그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능력이나 은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기도를 하게 되고, 또 부탁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게 있어야 지금 나에게 주어진 자리를 잘 감당할 수 있다고 믿으니까요. 그리고 그게 사실이구요.

성경은 일을 맡길 때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일을 맡을 때, 필요한 것이 다른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고린도전서 4장 2절이에요.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린도전서 4:2)

전에도 한 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 말씀이죠.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어요. 전에 6월에 이 성경말씀이 포함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그 때는 온라인 예배를 드리지 않은 때라 자료가 남아있지를 않네요. 그래서 이렇게 또 제가 한 번 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아무튼 이 말씀, 꼭 우리 청년플러스가 아니더라도 아마 한 번 쯤은 들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무슨 일을 맡을 때, 그래서 임직식이나 혹은 그와 비슷한 자리에서 많이 읽히는 성경구절입니다. 그리고 그 때도 말씀드렸지만, 이 구절을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뭔가 좀 어색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뭔가 되게 불편한 성경구절이에요. 왜인지 아시겠어요? 우리가 기도했던 내용과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에요. 맡았습니다. 책임이 생겼습니다. 해야 할 일이 생겼어요. 그리고 구해야 할 것은 충성이라는 거에요. 능력이 아니라는 겁니다. 지식이 아니라는 거에요. 그것보다 먼저 구해야 하는 게 충성된 마음이라는 거에요.
왜 그럴까요? 왜 우리는 능력이 아니라 충성된 마음을 구해야 할까요? 왜냐하면, 그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필요하시면 모든 능력으로 부어주실 것을 믿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이 온 세상의 주인이라는 고백은 단지 물질적인 것, 눈에 보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거든요. 하나님이 돈이 많고, 땅이 많고, 다이아몬드나 진주같은 금은보화가 많다는 의미가 아니라구요. 물론 그런 것도 많으시겠죠. 그런데 그런 것을 넘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것까지 다 하나님의 소유라는 말이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가진 명예, 지식, 능력, 그 외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의 모자람이나 부족함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시겠다고 하실 때, 하나님이 나를 그 자리에 세우셨다고 고백할 때, 내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 일을 맡았다고 할 때, 나의 모습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믿는 거에요. 당연하잖아요? 그 자리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이 이미 가지고 계시고, 그 어떤 것 하나도 모자라지 않으시잖아요? 그러니까 그 중에 필요한 거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건 일도 아니라는 거에요. 그건 언제라도 하나님이 하실 수 있다는 거죠. 그런 건 하나님에게 있어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거에요.
그런데 딱 하나 문제가 되는 게 뭐에요? 바로 하나님이 나를 거기다 세웠다는 고백이에요. 그 믿음이에요. 그 순종이에요. 그건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이 아니라구요. 그건 나의 신앙 고백으로 하나님이 남겨놓으셨다는 거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 신뢰의 순종만큼은 내가 선택할 수 있게 놔두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에게 충성을 요구하신다는 거에요.

왜 하나님이 다윗을 사랑하셨냐 하면요…

바로 이런 사람의 가장 좋은 예가 다윗인 거에요. 다윗의 일생을 보면, 하나님이 왜 다윗을 사랑하셨는지 눈에 보입니다. 바로 이 믿음, 이 고백의 삶을 산 게 다윗이거든요.
맨 처음 다윗을 부르신 것도 바로 이런 다윗의 마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다윗의 마음을 꿰뚫어보셨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 바로 골리앗과의 전투 장면이에요. 혹시 여기서 다윗이 어떻게 사울왕에게 이야기했는지 기억하시나요? 사무엘상 17장 37절입니다.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사무엘상 17:37)

이걸 메세지 성경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조롱하는 저 블레셋 사람에게도 제가 똑같이 할 것입니다. 사자의 이빨과 곰의 발톱에서 저를 구해 내신 하나님께서 저 블레셋 사람에게서도 구해 내실 것입니다. (사무엘상 17:37)

이게 바로 “충성”을 구하는 사람의 모습이라는 거에요.

물론 이런 다윗도 우리가 아는 것처럼 실수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힘이 있는 줄 알았거든요. 자기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실수를 한 거에요. 자기에게 있는 권력이 자기가 잘해서 얻은 건 줄 알았던거죠. 그래서 우리가 아는 것처럼 밧세바 사건을 저지른다구요. 남의 여자를 자기의 왕궁으로 불러들이고, 같이 잠자리를 하고, 그리고 그 남편을 죽이고, 그 아내를 자기 아내로 삼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구요. 그걸 자신의 힘으로, 권력으로 억누르고, 숨기고, 묻어버리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그에 대해서 나단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사무엘하 12장 7절에서 9절이에요.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사무엘하 12:7~9)

하나님이 주실 수 있다는 거에요. 하나님이 채워주신다는 거죠. 그렇게 사랑하는 다윗인데, 뭘 달라고 한들 안 들어주시겠어요? 그런데 이제 자기가 채운다는 거에요. 자기가 챙긴다는 거죠.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하고, 찾고, 채우기 시작했다는 거에요.
네. 다윗에게 있어서 문제는 간음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음란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어요. 하나님에 대한 신뢰, 하나님에 대한 순종,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 그 믿음에 문제가 생겼다는 거에요. 그게 문제여서 음란한 생각을 했고, 욕심을 품었고, 간음을 했다는 거에요. 그게 하나님이 다윗을 심판하신 이유라는 거에요.

그래서 다윗은 다시 하나님 앞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 51편이에요.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시편 55:10~11)

잘 아는 본문이시죠? 찬양으로도 많이 불렀던 말씀입니다. 이 본문이 바로 다윗이 나단 선지자에게 밧세바 사건으로 혼난 후에 지은 시편이에요. 그래서 다윗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서 부른 시편이죠. 그래서 이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새로움은 영어로 표현하면, Something new가 아닙니다. 새로운 어떤 것이 아니에요. 이전과 다른 새로운 것이 초점이 아니에요. 그렇다고 죄 짓기 전으로 돌려달라는 말이 아니에요. 하나님만 신뢰하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이전의 모습으로 바꾸어 달라는 고백인 겁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마음, 하나님만 의지하는 마음을 달라는 그런 고백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의 고백

이런 하나님을 항한 충성심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설명했어요. 우리가 잘 아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에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이 삶은 그래서 더 이상 내 것이 아닙니다. 내 생명으로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으로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죄로 인해 죽어야 하는 이전 생명을 이제 주님 안에서 사라졌습니다. 더 이상 죽음과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생명을 허락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고백합니다. 더 이상 내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이미 내 인생이, 내 생명이 내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그 무엇을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는 사도바울의 고백은 진실입니다. 이미 내 삶이 주님 것이 되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 왜 무익한 종인가?
그렇다면 말이에요. 내가 하는 게 없잖아요? 내가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오늘 본문이 맞는 거에요.
>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이건 신앙적으로 고백되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내가 한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내 능력으로, 내 의지로, 내 생각으로 한 일이 아니라는 거에요. 하나님이 자신의 능력으로 나를 불러, 나를 변화시켜, 그 모든 일을 하게 하신 거라면, 내가 자랑할 게 뭐냐는 겁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의 영으로,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아있는 거라면 내가 하나님께 자랑하고, 뽐내고, 드러낼 일이 무엇이냐는 거죠.
그래요. 지금 이 고백을 해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 너가 가진 것이 누구 거냐고 묻는 질문인 겁니다. 정말 지금 내 삶이 누구 거냐? 그 삶을 살아가는 것이 누구를 위한 삶이냐? 예수님은 지금 대놓고 물어보고 계시다는 거에요. 그게 도대체 누구 꺼길래, 그걸 가지고 잘했다, 못했다,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는 겁니다.
정말 누구 겁니까? 정말 내 안에, 내 생각에, 내 마음 깊숙한 곳에 뭐라고 답하고 있어요? 신앙인인 척 살아야 하니, 하나님 거라고 말은 하면서, 가슴 한 켠에는 “그런데, 그렇지만, 그럼에도, 그래도 말이죠…”이러고 이야기하고 있는 건 아니냐는 거에요.
네. 다윗처럼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을지 몰라요. 처음에는 하나님 것이었어요. 하나님 능력으로 곰도 때려 잡았고, 사자도 때려 잡았어요. 그래서 골리앗도 때려잡았다구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다 내 건 줄 안다구요. 내가 했어요. 내가 이뤘어요. 내가 만들었어요. 내가 세웠어요. 그래서 내 거에요. 내 꺼라구요. 그리고 그렇게 변했다면, 변한 게 보이면, 다윗처럼 실수하고, 뚜드려 맞기 전에 회개 하자구요. 다시 돌아가자구요. 다시 마음을 새롭게 하자구요. 그게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거라는 겁니다.
두 번째로 그러니까 내가 종이라면, 나는 내놓을 것이 없어요. 종은 시킨 일을 하는 존재입니다. 그건 제대로 해야 밥값을 하는 거에요. 종은요, 자기가 알아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명령받은 것을 하는 존재가 종이에요. 내 생각이 없어요. 내 의도가 없어요. 주인이 맡겨주기 전까지는 내 의도나 생각으로 일하는 게 아니에요. 주인이 하라는 일을, 주인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게 종이죠.
이게요, 지금은 이걸 상상한다는 것 자체가 좀 쉽지 않습니다. 사실 이건 어떻게 보면, 지금 시대에는 로보트라고 봐야 할런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사람을 로보트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좀 애매하긴 합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우리가 분명하게 생각해봐야 해요. 우리가 종이라는 걸 모르면서 맨날 종, 종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은 하면서도, 종처럼 살지를 못하는 거죠. 종이 뭔지 모르니까요.
그래서 이건 분명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종은 자기 주장이 없습니다. 하라는 것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종에게는 순종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 결단이 아니니까요. 종에게는 순종이라는 말이 필요가 없어요. 순종하지 않을 권리가 있어야 순종이라는 말이 의미가 있죠. 그래서 이게 힘들어요. 사실 지금 시대가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고, 자기 생각이 가장 옳고, 자기 주장을 굽히는 것을 죽는 것보다 싫어하잖아요. 그러니까 순종이 선택인 것처럼 느껴요. 하나님께 순종해도 되고, 순종하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아요. 그게 무슨 나에게 하나님이 인정해 준 권리인 줄 안다구요. 그러면 종이라는 말은 빼세요. 종도 아니면서 무슨 맨날 종이래요?
물론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도 부르셨어요. 하나님의 자녀 아니라는 말이 아닙니다. 설마 지금 그런 것도 모르고 이야기하겠어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종과 같은 존재에요. 하나님이 나를 자녀로 삼아주셨고, 불러주셨다는 거지, 내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잊어버리면 안 된다구요. 그래서 사도 바울도, 그렇게 하나님의 자녀되었음을 주장했던 사도 바울도, 빌립보 교회에 편지보낼 때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에요. 빌립보서 1장 1절이에요.
>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빌립보서 1:1)
그래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묻는 거에요. 너가 지금 어떤 존재인지 아느냐는 거에요?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인지,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사는 사람인지, 아냐는 겁니다. 그리고 그게 정말 너의 고백이냐, 묻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오늘 본문은 정말 종이라면, 지금 내 생명이 하나님의 것이라면, 나의 가장 큰 기쁨이 뭐냐고 묻고 있는 겁니다. 내 삶에 가장 큰 기쁨이 뭐에요? 내가 이룬 업적이에요? 내가 세운 금자탑이에요? 내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에요? 아니라구요.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가장 기뻐해야 하는 것은 구원을 허락하신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라구요. 아니, 그것이 진정한 내 기쁨과 감사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에 비하면 다른 모든 것들은 그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이 이야기하죠.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이 말만 들으면 솔직히 기분 나빠요. 내가 왜 무익한 종이야, 내가 와 쓸데없는 종이야?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데? 그런데 말이에요. 이건 나에게서 나온 결과물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에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것이 내 것이 아니기에 내가 내놓을 것이 없는 거구요. 내가 무익하다 할지라도, 주인 곁에 남아있는 것이 기쁘기 때문입니다. 그게 나의 즐거움이나 행복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요. 그 자리에 있는 것, 그 자체가 감사에요. 그래서 우리는 무익한 종이 되어도 상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상관 없습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고, 봐주지 않아도 상관 없습니다. 그것이 대단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것이 혹시나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상관 없습니다. 아니 그보다 더 심각하게, 결과가 어그러지고, 실패한 것처럼 보여도 어쩌면 상관 없을런지 모릅니다. 그 결과는 주님이 판단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만이 나를 평가하는 잣대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그것이 내 노력과 열심의 보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 모든 결과의 보상은 주인이 알아주는 것입니다. 내 삶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알아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보상이고, 진정한 기쁨인 것입니다. 나를 그 자리에 사용해주시는 것이 기쁨인 것입니다. 내가 그 자리에서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이 기쁨인 것입니다. 내가 주님의 종이 되고,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서, 주님이 기대하시고 예정하신 뜻을 이루어가는 자가 되었다는 것 그 자체가 기쁨인 것입니다. 그래서 무익한 종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한 일은 없습니다. 주님이 하신 것입니다. 내가 드러날 자리가 없습니다. 어차피 주님이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저 그 모든 것은 주인의 기쁨으로 올려드릴 것 뿐입니다. 그저 나는 주님과 함께 그 자리에 있는 것, 그 자체가 감사일 뿐입니다.

## 마무리하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며, 이 무익한 종의 기쁨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그저 모든 것을 주님께 돌려드릴 수 있는 그 감사가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그저 한 해, 충성된 마음으로 주님의 일을 감당했음을 주님께 고백할 수 있기를 바라고, 그 마음을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는 주님의 손길 꼭 체험하는 이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한 번 더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실 일들을 기대하며, 그 충성된 마음 새롭게 하는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정말 무익한 종인가요? 정말 무익한 종이 되어도 좋습니까? 상관 없습니까? 정말 주님만 계시면, 주님만 함께하시면, 그 어떤 것도 기쁨이고, 감사가 됩니까? 이 질문에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이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하나님께 뭐라고 말씀드리시겠습니까? 이 한 해, 나에게는 무엇이 가장 큰 기쁨이 되었고, 감사가 되었나요?
이제 2020년을 마무리하고, 2021년을 준비해야 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하나하나 하나님 앞에서 셈해야 할 때가 되었고, 내가 살아야 할 한 해를 준비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다음 주면 대강절이 시작되구요, 성탄절을 지나면 한 해가 가고, 한 해가 와요. 교회에서 가장 정신없는 때죠. 그래서 조금 일찍 오늘 본문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추수감사절도 지난 주에 지내고, 이제 정말 추수 때인데,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의 질문에 바른 답을 올려드릴 수 있는, 그리고 그것이 단지 대답만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낼 수 있는 우리 모든 청년플러스 지체들이 다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생각할 질문들
* 무익한 종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어떤 생각이 드나요?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그리고 내가 무익한 종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드나요?
* 요즘 내 삶에 가장 큰 감사의 제목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것은 내 신앙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나요?
* 하나님 앞에 무익한 종이 된다는 것을 내 말로 표현해봅시다. 나는 어디에 중심을 놓고 싶으십니까?

## 기도문
하나님 아버지.
이 한해를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많은 것들로 맡겨주신 것 감사합니다. 모든 걸음에 함께하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그 모든 일을 이루신 손길에 감사하기 원합니다. 주님 받아 주옵소서.
한 해를 마무리하며, 주님께 나의 일들을 자랑하기보다는, 주님께 감사함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저 그 자리에 있게 하신 주님께 감사하며, 주님께 쓰임받은 것에 감사하는 내가 되기 원하오니,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나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혹시라도 나의 한 일에 대해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를 원합니다. 혹시나 그 일의 결과로 인해 너무 힘들어하거나, 부끄러워 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보다는 주님 앞에 충성되이 감당하지 못하였음에 부끄러워 할 줄 알게 하시고, 더욱 주님 향한 마음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 애쓸 줄 아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올해를 마무리하고 내년을 준비하며, 더욱 주님 향한 마음 온전하게 하며, 새롭게 하는 내가 되기 원하오니, 주님 나와 함께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간구 예수 그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청년플러스/주일예배

 

https://youtu.be/P31gjxMkc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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